죽음의 미로
아리아나 프랭클린 지음, 김양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작년 이맘때, 아리아나 프랭클린의 전작 [죽음을 연구하는 여인] 을 무척 흥미롭게 읽었다. 워낙 미국드라마 CSI에 열광하던 나였고, 그 때문에 법의학에 관해 관심을 갖게 되었으니, 중세의 여검시관이 주인공이라는 책의 소개글을 읽고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스토리라인도 탄탄했고 등장인물들이 모두 매력적이라 이제나저제나 다음 편이 나오기를 고대했었는데, 드디어 우리의 아델리아를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고전적인 분위기를 맛볼 수 있는 이야기이니만큼, 밀레이의 <오필리아>를 표지로 선택한 것은 탁월했다고 보인다. [죽음의 미로] 에서 독살당한 여인의 이야기에 더 잘 귀기울일 수 있을테니. 

그 동안 아델리아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아이들만 노리는 연쇄살인범을 붙잡기 위해 시칠리아에서 온 아델리아는 사건 종결 후에도 헨리왕의 압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줄곧 잉글랜드에 남아있다. 사랑하는 연인 로울리가 청혼을 했지만  평범한 여인의 삶이 아니라 의사의 길을 선택했고, 그 결과 로울리는 주교로, 아델리아는 여전히 의사로 늪지대에서 질사, 만수르와 함께 지내고 있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전편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앨리라는 딸이 하나 있다!  그렇게 평온하고 따뜻한 나날을 보내던 아델리아는 헨리왕의 정부 페어 로저먼드가 독살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범인으로 떠오르는 인물은 왕의 아내 엘레오노르 왕비. 고울리는 그들이 평범한 남녀가 아니라 왕과 왕비라는 점에서 내란이 일어날 것을 우려하고, 아델리아는 하나씩 하나씩 단서를 발견하면서 위험하고도 아찔한 모험을 향해 첫발을 내딛는다. 

[죽음을 연구하는 여인] 에 흠뻑 빠졌던 독자라면 [죽음의 미로] 도 덥석 집어들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죽음의 미로] 는 [죽음을 연구하는 여인] 에 비해 약간 심심한 맛이 난다. 물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살인사건은 두 건이나 일어나고, 그 외에도 많은 생명들이 허무하게 목숨을 잃지만 극적 긴장감은 [죽음을 연구하는 여인] 에 비해 살짝 떨어진다. 사건의 진행을 묘사하는 부분보다는 아델리아가 아기를 낳은 한 어머니로서 느끼는 불안감, 상황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루고 범인 밝히기는 어쩐지 한 발 뒤로 물러난 듯한 기분이 든다. 

시칠리아에서 양부모님에 의해 남자와 동등한 대접을 받으며 고등교육을 받은 아델리아에게 잉글랜드에서 여성으로서 당하는 취급은 상당히 견디기 힘들었다. 주교가 된 로울리를 따라왔다는 것만으로도 창녀 대접을 받고, 아라비아어를 할 줄 알고 의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마녀 취급을 받는다. 페어 로저먼드와는 별개로 일어나는 또 다른 살인사건의 주인공인 엠마를 통해서도 중세의 여성의 삶이 얼마나 가혹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죽음을 연구하는 여인] 에서는 살인사건을 주축으로 하여 시대배경을 설명하고 아델리아의 여성으로서의 고뇌의 기초가 세워졌다면, [죽음의 미로] 에서는 한 명의 어머니로서, 여성으로서 잉글랜드에서 살아가는 아델리아의 모습이 드러난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그런 인간적인 면에 더 동질감을 느끼면서 작품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로울리와의 관계가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흠흠;;) 연인인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될 것인지 3부작의 마지막인 다음 작품에서는 꼭!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죽음의 미로] 에서 사건과 연관된 사람이 한 명 더, 다음 편에서도 등장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역사 추리소설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만든 아델리아 시리즈, 다음 편은 좀 더 빨리, 그리고 즐겁게 만나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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