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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도쿄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재치있고 유쾌한 이야기꾼이라 불리는 오쿠다 히데오. 그 명랑과 익살 때문에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일본소설을 좋아하고, 꽤 유명한 작가들의 책은 거의 읽었다고 자부하는 나는 정작 그의 책을 손에 든 적이 없다. 많은 팬을 탄생시킨 [공중그네]를 비롯한 아라부 시리즈, GIRL 이 책장에 꽂혀 있기는 하지만 어쩐지 밀쳐지고 밀쳐져 자꾸만 책장 깊은 곳으로 숨어버렸다. 그런 와중에 '뭐, 유쾌하면 얼마나 유쾌하고 재미있으면 얼마나 재미있겠어'라고 생각하며 처음으로 집어든 그의 작품, [스무살 도쿄]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지하철에서 내내 책을 읽다가 나는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주위 사람들에게 다 들릴 정도로 말이다.
재수생활을 위해 나고야에서 도쿄로 상경한 다무라 히사오, 그가 우리의 주인공이다. 작품은 모두 여섯 부분으로 나뉘어져 그의 10년의 세월을 그리고 있다. 대학에 입학하고 처음 여자친구가 생긴 일, 재수를 하러 도쿄로 왔을 때 느꼈던 그 밤의 달콤쌉싸름한 감정들, 취직하고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다니며 맛보는 삶의 잔상들, 나이를 먹고 결혼적령기가 되어 처음으로 선 아닌 선을 보러 나가 만난 그녀, 그리고 서른을 코앞에 두고 일어나는 히사오의 일상들이 마치 가까운 친구의 이야기인것처럼 눈 앞에 펼쳐진다.
사실 작품 초반에 그려지는 히사오의 모습은 살짝 한심하다. 아무런 꿈도 없고, 뭘 하고 싶은지, 뭐가 되고 싶은지도 모르는 채 그저 술을 마시고 하루하루를 가볍게 보내버린다. 막연히 '음악평론가'의 길을 꿈꾸지만, 그저 꿈만 꿀 뿐이다. 히사오의 그런 일상을 약간은 질책하며 책을 읽던 나는 순간 무언가를 깨달았고, 또 부끄러웠다. 내가 처음 대학에 입학했을 때는 어땠는가를 돌이켜보았기 때문이다. 난생 처음 주어진 자유로운 시간 안에서 나 역시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지 많이 방황하고, 남에게 티를 안냈을 뿐 마음 고생을 많이 했었다. 나도 그런 길을 걸어왔으면서, 어느 새 나는 나만의 기준으로 그의 청춘을, 그의 젊음을 비난하고 있었던 것이다. '젊다는 건 특권이야. 너는 얼마든지 실패해도 괜찮다는 특권을 가졌어'라는 표지에 새겨진 문구의 진정한 의미를 어쩐지 알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히사오도 버젓이 직장을 구하고, 의젓한 한 사람의 인생을 살아낸다. 서른을 코앞에 두고 지나간 세월을 반추하며 미래를 바라본다. 지하철 안에서 웃음을 터뜨리게 할만큼 지나치게 유쾌하지만, 그 안에 담긴 오쿠다 히데오가 세상을 보는 시각은 결코 가볍지 않다. 유쾌함으로 포장되어 있으나, 속은 알싸하면서도 땀냄새가 나는 것 같은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어쩌면 그런 면이 오쿠다 히데오에게 열광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지하철 안에서 터져버린 웃음을 멈추지 못하고 킥킥거리며 내렸을 때, 불안했던 나의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순간 그의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 아라부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책장에 꽂힌 채 고개를 쑤욱 내밀고 있을 오쿠다 히데오의 또 다른 주인공들을 조금은 기대에 찬 마음으로 만나러 가야겠다.
덧붙이기 : 이야기들이 시간 순서이기는 하지만, 첫 번째 이야기와 두 번째 이야기는 시간의 순서라고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편집상의 오류인 걸까?..아니면.. 작가의 의도?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