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 1
이민진 지음, 이옥용 옮김 / 이미지박스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리뷰를 올리기 위해 책검색 창을 열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 저자의 이름은 우리나라 이름인데 책은 외국소설로 분류되어 있다. 작가인 이민진이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작품이 '국내'소설이 아닌 '국외'소설로 분류되는 것에 공연히 심술이 난다. 작품 속에서 그려지는 주인공 케이시 한이 어쩐지 그녀의 모습일 것 같아서, 미국에서 힘든 시기를 보냈을 그녀를 모국인 우리가 저리 내치는 것 같아 괜히 기분이 안좋다. 하기야 영어로 쓰인 것을 한국어로 번역했으니, 그럴 수도 있겠지 싶다. 

어렸을 때 나는 이민을 간다는 친구들이 무척 부러웠다. 그리 많은 수의 친구들이 이민을 가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초등학교 때 한 두명은 이민을 갔던 것 같다. 그 때는 어려서 아메리칸 드림이 뭔지도 잘 몰랐다. 그저 새로운 세상, 넓은 세상과 만나게 될 그들에게 마냥 질투가 났더랬다. 아메리칸 드림. 한국에서 고생하고 어려움을 겪었던 많은 이들이 지금도 꿈을 품고 미국으로 향한다. 우리보다 훨씬 잘 산다고 하는 선진국에 가면 지금보다 나은 인생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부푼 기대를 안고 말이다. 그런데. 과연 그들은 그들의 꿈을 이룰 수 있었을까. 정말 한국에서 사는 것보다 더 부자가 되고, 더 행복한 삶을 누렸을까.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음식]은 한국계 미국인이 된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들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많은 사람이 등장하지만, 이야기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것은 세 여인이다. 한국전쟁을 겪고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와 세탁소를 하며 힘들게 살아온 전형적인 한국여자 리아, 모든 것에 자유롭고 개방적인 그녀의 딸 케이시 한, 그리고 한없이 여리고 착한 케이시의 친구 엘라 심. 온갖 고생을 하면서도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문화를 잊지 않으려고 애쓰는 리아와 그녀의 남편 조셉과는 달리, 딸 케이시는 영리하며 성(性)에 있어서도 자유로운 개방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장학금을 통해 학교를 마치고 사회로 나온 케이시는 자신의 소비욕구를 온전히 만족시켜 줄 수 없는 현실과 마주하고, 남자친구의 배신과  생활고 속에서 방황한다. 한편 케이시의 친구 엘라 심은 아름답고 정숙한 여자로 테드 김이라는 한국남자와 결혼하지만, 결국 그의 외도로 파경을 맞는다. 

자유로운 사고를 가진 케이시는 남자들과의 관계, 임신, 낙태에 있어서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순간에야 고민하고 괴로워하지만, 결코 그것을 잘못이라 여기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살아나가려 한다. 그러나 그런 그녀는 번번히 보수적인 아버지와 부딪힌다. 아버지 조셉과 케이시의 관계는 단절되어 있으며 그 옆에서 어머니 리아는 항상 남편의 눈치를 살필 뿐이다. 어쩌면 많은 이민 가정들의 모습이 이와 같지 않을까. 더 잘 살아보겠다고 도착한 미국에서의 생활은 그리 녹록치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 사용하던 기술이 미국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을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결국 먹고 살기 위해 어떤 일이든 해야 한다. 부모는 항상 바쁘고, 아이는 외로운 가운데 또래 친구들과 사귀면서 점점 미국의 사고방식에 물들어간다. 부모자식 사이에 깊은 골이 생기게 되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한국계 미국인들이 미국사회에서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느냐 하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은 것 같다. 작품 속에서 케이시 한은 결국 미국의 상류사회로의 진출은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다. 게다가  미국인 남자친구와의 사이에는 무시할 수 없는 사고방식 차이가 존재한다. 한국인이라고 하기에는 영어를 쓰고, 미국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으며, 미국에 생활터전이 있다. 그러나 완전한 미국인이라고 하기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 자유롭고 싶은 케이시도,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했지만 그 사랑이 깨져버린 엘라도 결국에는 어디서나 혼자다. 

작년에 조승희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이민자의 삶을 그린다는 이 책의 홍보문구에 마음이 동했었다. 하지만 이민자의 삶을 객관적으로 보여준다기보다 사랑을 중심에 놓고 전개해나가는 이야기의 구조는 여느 한국소설과는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어쩌면 작가는 바로 그 점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언제나, 어디서나, 무슨 일이 있든 삶은 계속된다는 것을.  사랑에 아파하고, 가족과 갈등하며, 다른 사람에게 이해받을 수 없는 부분을 홀로 끌어안고 괴로워하지만 결국에는 앞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 그것이 우리들 모두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삶의 모습인 것이다.

작품의 제목인 백만장자의 공짜음식은 케이시가 컨 데이비스에 취직하기 위해 면접을 보러 갔을 때 음식을 먹으면서 나온 이야기다. 백만장자들일수록 공짜를 더 좋아한다는<백만장자를 위한 공짜음식> . 인생은 때로는 아름답고, 때로는 고통스럽다. 그렇게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다보면 언젠가는 우리도 공짜음식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마지막에 희망을 그리는 케이시의 모습이 그것을 말해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