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허에 떨어진 꽃잎 VivaVivo (비바비보) 3
카롤린 필립스 지음, 유혜자 옮김 / 뜨인돌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파란 물에 떨어져 있는 꽃잎들이 애처롭다. 마치 어린왕자의 망토마냥 빨간 옷을 걸치고 꽃송이를 꽉 쥐고 있는 저 손은 과연 누구의 손인가. 남자아이일까, 여자아이일까. 입고 있는 코트의 색깔로 미루어 여자아이라고 판단했다면, 어쩐지 씁쓸하지만 그것이 정답이다. 강한 인상을 주는 색의 표지만 보면 아련한 사랑이야기거나, 따스한 동화같은 이야기, 혹은 성장소설이 담겨 있을 것 같다. 성장소설, 맞다. 이것은 다른 의미로 본다면 성장소설이다. 그러나 희망보다 슬픔의 감정을 더 느끼게 했던 가슴 아픈 이야기다. 

며칠 전 중국에서 대지진이 일어났다.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학교에서 수업 받던 학생들이 그대로 매몰되어 사망한 일이었다. 어떤 학교에서는 체육 수업을 하던 한 개반의 학생들만 가까스로 살아났다고 한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이야 시공을 뛰어넘고, 국경을 뛰어넘어 매한가지겠지만은, 중국의 경우에는 조금 더 특별하다. 1970년도까지 출산을 환영했던 중국 정부는 먹여 살려야 할 인구가 갑자기 늘어나자 1979년 '1가정 1자녀 법'을 제정하기에 이른다. 1982년도에 일부 법안이 개정되기도 했으나 여전히 그 법은 시행되고 있다. 만약 둘째 아이를 갖게 될 경우에는 막대한 양의 벌금을 물어야 하고,  불법으로 낳은 아이들은 호적에도 올릴 수 없어 국민으로서 제대로 된 대접도 받지 못하고 살아가야 한다.  때문에 자의든 타의든 한 가정에 한 자녀가 대부분인 중국에서 지진으로 인해 학생들이 사망했다는 것은, 그들의 부모에게는 이제 '자식'이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작품의 주인공 레아는 1988년 중국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고아원에서 입양했다는 독일인 부모의 말을 철썩같이 믿고, 그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지만 중국이 서서히 레아에게 다가온다. 학교 신문기자로 일하고 있는 레아가 진시황제의 모형 무덤 전시회에 취재를 간 것을 계기로 중국의 여러 사정에 관심을 갖게 되고,  결국 자신이 비닐봉지에 쌓여 친부모에게 버림받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중국의 1가정 1자녀 정책이 원인이라고 생각한 레아는 급기야 중국으로 날아간다. 두렵지만, 아프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친부모가 어째서 자신을 버렸는지 알기 위해서. 

작품이 그리고 있는 중국의 1가정 1자녀 정책의 상황은 끔찍하다. 부모를 모시고 대를 이어가야 하는 아들이 중시 여겨지고 있기 때문에  딸이 태어나면 버리거나 강물에 흘려보낸다. 아들을 얻기 위해 부모 스스로 태어난 딸을 살해하거나 시장에서 아이들이 매매된다. 아들을 낳은 어머니는 위상이 높아지지만, 딸을 낳은 어머니는 죄인 취급을 받는다. 작품 속에 나타나있는 묘사가 중국의 전체적인 모습은 아닐 것이라 스스로 위로해보지만, 어느 정도는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을 것이기에 마음이 아프다.  

우리가 중국의 상황을 비난할 자격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예전 우리나라도 남아선호사상으로 많은 딸들과 어머니들이 핍박받는 삶을 살았었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인식은 많이 바뀌었고 앞으로도 좋은 방향으로 남녀의 위계관계가 사라질 것이라 믿는다. 나는 장남인 아버지 밑에서 첫째 딸로 태어났지만 피부에 와닿게 남동생과 차별받았다는 느낌을 가진 적은 거의 없다. 오히려 사촌들까지 모두 남자라, 조부모님께도 더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라왔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여자라서 안됐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내가 내 성별에 느끼는 자부심을 중국의 많은 여자들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작품은 레아가 자신의 생모와 강물에 꽃잎을 뿌리며 끝을 맺는다. 여자라는 이유로 태어나자마자 죽음을 맞이한 친언니를 기리면서. 강물에 떨어진 그 꽃잎이 흐르고 흘러 많은 사람의 마음을 적시게 되면,  결국에는 꽃잎만큼이나 태어난 아이들은 모두 예쁘고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날이 머지 않아 올 것이라 믿는다. 비록 중국이라는 나라는 우리와 생각이 다르고 국제적으로 대립하기도 하지만, 지금은 그런 문제를 떠나 한 인간으로서 그들이 남자아이든 여자아이든 똑같은 자식, 인간으로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