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티볼리의 고백
앤드루 손 그리어 지음, 윤희기 옮김 / 시공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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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면, 베개를 베고 누워 별을 바라볼 소년이 있다.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별 자체가 되고 싶어하는 소년. 그의 눈동자에 비치는 것은 사실은 무엇이 될까. 끝도 없이 펼쳐질 별들의 무리가 될지, 아니면 강렬하지만 힘들게 펼쳐져왔던 그의 온 생애가 될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이제 별이 될 그 소년을 위해 우리가 해줄 것이 있다면 그의 진지한 고백을 우리의 마음 속에 아무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일 뿐이다.
 
소년의 이름은 막스 티볼리. 열 세살의 어린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공허한 눈빛을 가진 사람, 안타까운 운명을 타고난 사람. 그가 태어났을 때 가족과 주위 사람들은 경악했다. 태어난 그의 모습이 도저히 갓난아기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노쇠해 있었으므로. 70세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난 그에게, 할머니는 그가 언제쯤 수명이 다할 것인가를 계산하여 기록한 펜던트를 남겼다. 부모들은 겉모습에 알맞은 연령대를 연기해줄 것을 권유했으므로 그는 17세 소년일지라도 50대의 성인 역할을 해야만 했다. 그런 그의 앞에 운명의 여인 앨리스가 나타난다. 오해와 두려움으로 앨리스는 떠나지만, 그 때부터 그의 평생을 건 사랑을 향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10대에는 앨리스를 곁에서 바라만보았고, 30대에는 그녀와 사랑을 나누었으며, 50대에는 그녀 곁에서 다른 사람 역할을 하며 머물 수밖에 없었던 막스 티볼리. 그런 그의 곁에는 어린시절부터 그와 함께해 온 유일한 친구, 휴이가 있었다.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사람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지만, 막스의 고백만큼 놀랍고 기괴한 운명은 처음이었다. 운명이라고, 그렇게밖에 이름붙일 수 없는 그의 생애는 가면 무도회에 불과했다. 가족과 휴이를 제외한 사람들 앞에서 늘 자신의 본모습을 숨긴 채 다른 사람을 연기해야했고, 10대 소년에게 당연히 찾아온 첫사랑은 그에게 아픔과 후회만 남기고 떠나간다. 머뭇거림과 공허, 그림자의 인생을 살던 그였으나 그의 사랑은 다른 모든 이의 사랑보다 강하고 튼튼했다. 집요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그의 사랑을 보면서 앨리스가 그의 진심을 알아주기를 바랐다. 그녀가 조금 더 귀와 마음을 열어낼줄 아는 사람이었다면, 막스의 그녀를 향한 첫 고백과 두 번째 고백의 일관성을 깨달을 수 있었을텐데. 막스에게 사랑은 삶을 살아가는 이유였지만, 사랑의 대상이 된 여인은 그의 사랑을 받을만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것이 그가 영원한 행복을 꿈꿀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막스 티볼리의 이야기를 하면서 앨리스만큼이나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그의 친구 휴이. 막스와는 달리 보통 사람의 모습을 하고 태어난 그였으나, 그의 삶 또한 아늑하고 편안한 것이라고 말할만한 것은 아니었다. 책의 첫장을 펼치면 하나의 문장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다-. 그 문장 안에는 막스 자신 또한 포함되어 있다. 이 문장 없이, 그리고 휴이 없이는 그의 고백은 완성될 수 없다.
 
금발의 성숙한 눈빛을 한 소년을 보며 나는 다시 생각한다. 얼마 남지 않은 삶의 길목에서 택할 수 있었던 선택이 정말 그것 하나 뿐이었느냐고. 주는 사랑만이 아니라 받는 사랑도 한 번쯤 해봤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그러나 그의 고백 앞에서 이런 충고는 아무 소용이 없다. 고백이란 그렇다.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진지하고 심각하지만, 듣는 사람에게 있어 그것은 짐이 되거나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거나. 짧은 순간,  내 일처럼 생각할 수는 있어도 진정한 내 일이 될 수는 없다. 초반에 그의 고백에 귀기울일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때문에 나의 충고는 그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그를 불쌍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련다. 그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고, 단 하나의 사랑을 위해 노력해왔다. 다른 사람들과 색다른 외모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의 인생 전체가 불행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어쩌면 자신이 원하는대로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 남을 수 있었기에, 그는 자신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자, 이제 그는 배를 타고 별을 보러 떠났다. 그 배 안에서 그는 아무 근심과 걱정 없이 그가 바라던 세계로 돌아갈 것이다. 그가 태어날 때 바랐던, 보통 사람들의 태초의 모습으로. 그리고 나도 그처럼 누워 그의 고백을 하나하나 되새길 것이다. 그의 강한 사랑을, 그가 바라던 것을 내가 가지고 있다는 그 소중함을. 읽어가면서 하나하나의 베일이 벗겨지는 듯한, 독특한 분위기의 숭고한 이야기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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