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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 ㅣ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3월
평점 :
일본의 시대는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상대-중고-중세-근세-근현대로 나누어지는 이 시대들을 다시 세세하게 살펴보면, 조몬 시대-야요이 시대-고분 시대-나라 시대-헤이안 시대-가마쿠라 시대-무로마치 시대-아즈치 모모야마 시대-에도시대 로 나누어진다. 이 시대 구분 안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대는 헤이안 시대와 에도 시대인데, 이 둘은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헤이안 시대는 귀족들의 시대로 고상하고 우아한 느낌이 강한 반면, 에도 시대는 이른바 초닌(町人)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시대로 자유분방하고 성(性)에 있어서도 구속하거나 구속받으려 하지 않는 서민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로 유명한 미야베 미유키의 '미야베 월드 제2막'은 이러한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쓰여진 아주 흥미로운 작품들이다. '미야베 월드 제2막'의 첫번째 작품이었던 [외딴집]에 이어 출간된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는, 현재 도쿄 스미다 구에 해당하는 에도 시대의 혼조를 배경으로 전해지던 일곱 가지의 기이한 이야기에 작가 자신의 상상력이 덧붙여져 쓰여졌다.
한쪽으로밖에 잎이 나지 않는 갈대에 얽힌 히코지와 오미쓰의 이야기인 <외잎 갈대>를 비롯하여, 아가씨가 연모 상대와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한밤중에 에코인 경내에 가서 자갈을 주워오는 오린의 이야기 <배웅하는 등롱>, 죽은 남편에 얽힌 미스터리를 그린 <두고가 해자>, 범인을 잡는 데 방해가 된다는 말을 들은 뒤부터 잎이 나지 않는 나무의 이야기에 살을 붙인 <잎이 지지 않는 모밀잣밤나무> , 사람의 심리를 치밀하게 표현한 <축제음악>, 천장을 부수며 내려오는 거대한 발에 얽힌 이야기인 <발 씻는 저택>과 마지막으로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란 무엇인가를 그린 <꺼지지 않는 사방등>까지 미야베 미유키 특유의 재치있고 날카로운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옴니버스 형식을 취하고는 있으나, 에도시대의 오캇피키(하급 관리 밑에서 범인의 수색과 체포를 맡았던 사람)에 해당하는 에코인의 모시치는 어느 이야기에서나 빠지지 않고 등장하여 약간의 통일성 또한 보여준다.
사실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은 분위기가 어둡다고 느껴왔기 때문인지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걱정이 되었다. 아무래도 [외딴집]이 너무 어려웠다고 말한 사람들이 많았던 탓도 있을 것이다. [외딴집]보다 쉽게 읽힐지는 모르지만, 이 책은 짤막한 단편들 안에 에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정겹게 그리고 있으면서도 결코 가벼운 주제만을 다루고 있지는 않다. 자신들의 죄를 덮어버리기 위해 쉽게 사람을 죽이거나, 진심을 감추고 오랜 세월 감정의 응어리를 풀지 못한 채 살아가는 부부가 등장한다. 외양만 보고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판단해버리는 풍조는 현재와 비교해서 전혀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슬프고도 어두운 이야기 속에서 가슴에 왈칵 차오르는 무언가를 느끼게 하는 작가의 글쓰기는 정말 굉장하다.
내가 시대물을 좋아하는 이유는 가슴 속에 아련한 향수를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고 외국이고를 막론하고, 전통적인 의상과 풍습, 풍경 묘사들을 상상할 때면 나도 그 시대 속으로 풍덩 뛰어들고 싶다는 충동이 생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이야기는 정말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표지 또한 책의 분위기와 잘 어우러져 마치 책 속의 인물들이 나에게 손짓을 하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 정도다. 날카로운 시각과 뛰어난 글쓰기로 매번 나의 가슴을 감동과 놀라움으로 뒤흔드는 미야베 미유키. 다음 작품은 또 어떤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날 것인지 무척 기대가 된다.
오늘밤 이 책과 함께 에도 시대 사람들과 어울려 보심이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