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아, 평화를 믿어라 - 엄마의 전쟁 일기 33일, Reading Asia
림 하다드 지음, 박민희 옮김 / 아시아네트워크(asia network)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마음이 저렸다. 화가 났다. 눈물이 났다. 그리고 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예전 어떤 책을 보고 생각했었다. 주위에 눈을 돌려 세계를 바라보자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모르는 사람들의 아픔이지만 내 아픔처럼 그렇게 다가왔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자고. 하지만 어쩌면 그것조차도 자기만족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매주 일요일 예배를 보러 가서 '평화를 달라'고 마음 속으로 기도하지만, 내가 진정으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평화를 바라본 적이 있었던가. 단 한 순간이라도 지금도 전쟁, 기아로 아파하는 그들을 위해 온 마음을 다해 신께 매달려 본 적이 있었던가. 이 책은 나를, 그리고 지금의 우리의 나태함을 부끄럽게 만드는 한 엄마의 33일간의 전쟁기록이다. 

레바논. 그 곳이 어디인지 아는가. 나는 몰랐다. 중동의 파리라고 불리는 베이루트와 아름다운 지중해, 눈 덮인 산, 풍요로운 곡창지대인 베카 계곡이 공존하는 곳이며 고대 유적들이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곳. 그곳이 바로 레바논이었다. 19~20세기 초, 중동 쟁탈전에 나선 영국과 프랑스에 의해 식민통치를 받았고, 1926년 별도의 국가로 재탄생했으나, 언제나 아랍국가와 서구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위태로운 나라. 그곳이 레바논이다.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수천 년 동안 살아온 땅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레바논으로 몰려왔고, 그 결과 수니파 무슬림들이 증가하자 결국 기독교도들과 무슬림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다. 그것이 1990년까지 계속된 레바논 내전이다. 레바논. 내전을 통해 황폐해졌지만 재건을 위해 노력하고 있던 그 곳에서 2000년 또 끔찍한 전쟁이 발생한다. 

1949년 이스라엘과 레바논은 휴전협정을 체결했지만 그 후에도 레바논과 이스라엘의 싸움은 끊이지 않는다. 저자가 기록한 전쟁일기의 배경은 2000년. 1982년 이스라엘이 두 번째로 레바논을 침공했을 때 만들어진 레바논 최대의 무장단체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에 붙잡혀있는 남부 주민들과 저항전사들의 석방을 요구하기 위해 이스라엘 사업가와 군인 3명을 납치해 벌어진 일이었다. 협상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곧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전쟁이라기보다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학살에 불과했다.


 아카쉬 가족은 오늘 아침 이스라엘 공습으로 죽었다. 그의 아들은 헤즈볼라와 관련이 있지만 군사적 임무와는 전혀 상관없는 성직자였다. 이스라엘은 아카쉬의 집에 미사일 4발을 투하했다.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손자 10명이 살해됐다. 미사일은 집을 완전히 부수고, 온 가족을 땅 속에 묻어버렸다. 구조대원들은 2시간이 넘는 작업 끝에 실종자 12명 중 10명의 주검을 발굴했다. 나머지 2명의 주검은 아직도 찾지 못했다. ....또 다른 남부 마을 집킨에서는 이스라엘 전투기가 가정집을 폭격해 바지씨 가족 12명을 살해했다. 그 중 6명이 어린아이였고 막내는 일곱 살이었다. 바지 씨는 헤즈볼라와 관련이 없었다-p96, 97

남부 레바논에 집중된 공격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피난길에 올랐다. 그 길에서 또 많은 사람들이 몰살당했다. 피난 가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계속 로켓을 쏘았고, 심지어 건물 밑에 깔린 부상자들을 구하러 가는 구급차에도 공격을 가했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를 공격하기 위해서라고 발표했을 뿐, 그 어떤 사과의 말조차 없었다. 음식과 약품은 빠르게 떨어져갔고, 상처입은 사람들은 늘어만 갔다. 저자인 림 하다드도 기자인 남편이 취재를 그만두고 하루빨리 집에 돌아오기를 바라며 두 아이들과 함께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이스라엘은 정말 몰랐을까. 전쟁의 피해를 가장 많이 입게 되는 것이 과연 누구인지.


 내 사랑하는 아들이 죽었어요. 다른 두 아이를 돌봐야 하니까 이렇게 살아가는 거에요. 그 애들에게 내가 필요하니까..당신은 어머니니까 이해하겠지요? -p288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인해 죽은 사람들의 1/3이 어린아이들이었다. 그 중에는 생후 15일 된 아이도 포함되어 있다. 이스라엘이 진정한 전쟁을 원했다면 민간인을 그렇게 학살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피난 가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죽음의 사자를 내려보내려 했었다면 애초에 빨리 피난가라는 공문을 뿌리지 말았어야 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림과 함께 외치고 있었다. 이스라엘아, 너희들이 무엇을 했는지 와서 보아라. 너희들의 아이들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짓을 저지를 수 있겠는가. 아이들의 죽음 앞에서는 아무리 정의의 이름으로 행해진 일이라도 그 빛을 잃는다 .

저자인 림은 많은 자식들을 잃은 어머니들 앞에서 자신의 아이들만 건강하게 지켜낸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다고 했다. 나 또한 책을 보면서 똑같은 심정이었다. 2000년. 나는 그 때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 하지만 그 전에 레바논이 그렇게 무너져가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던 미국에 분노가 치밀었다. 강력한 유대국가 이스라엘의 친구 미국은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붕괴시켜갈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레바논을 방문한 콘돌리자 라이스는 '새로운 중동이 태어나기 위한 산통'이니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과연 건물에 깔려 매몰된 사람들의 시체를 보았을까. 까맣게 타버려 석탄처럼 되어버린 아이들의 시체를 보았을까. 자식을 잃고 통곡하는 어머니의 눈물을 보았을까. 

미국은 하루에도 수 십명의 사람들이 죽어가는 레바논에 이스라엘의 공격이 퍼부어지는 기한을 늘리고 늘리고 또 늘여주었다. 레바논의 총리 푸아드 시니오라가 방송에 나가 눈물로 중재를 요청해도 귓등으로도 들어주지 않았다. 9.11 테러의 끔찍함으로 인해 테러리스트는 짐승만도 못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지만, 미국은 스스로 테러를 일으키고 있다. 자신들의 이익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게 바라보고만 있는 미국에 대한, 이스라엘에 대한 분노는 또 다른 테러를 낳고, 그 테러는 전쟁을, 그 전쟁은 다시 테러를 낳는다. 강대국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도록 전세계의 사람들의 고통을, 평화를 생각해줄 수는 없는 것이었는지 생각할수록 안타깝고 화가 난다. 이도저도 떠나 죽어가는 아이들이 자신의 자식이라고, 하다못해 미국의 아이들이라고 생각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일까. 

하지만 림은 자신의 아이들에게 평화를 믿으라고 가르친다. 증오 대신 사랑을 가르치려고 노력한다. 전쟁은 그 어디에서도 다시 일어나서도 안되고, 일어날 수 없는, 사전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단어가 되어야 한다. 지구촌에서 전쟁이라는 잔인한 일이 그 어디에서도 계속되지 않기를, 고통받는 아이들이 없기를, 평화가 함께 하기를, 이제는 온 마음을 다해 빌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할 것 같다. 표지에 있는, 총을 들고 웃고 있는 한 남자의 웃음이 너무 밝아서, 빨간 옷을 입고 달려나가는 아이가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갑자기 가슴 한 쪽이 시큰해진다.


 마음에 증오를 새기지 마라. 아랍인과 유대인이 친구가 될 수 있고, 레바논과 이스라엘이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믿어라. 정의롭고 참된 평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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