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팅게일의 침묵 가이도 다케루의 메디컬 엔터테인먼트 2
가이도 다케루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병원을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는 나에게 공포 그 자체다. 빈 병실에서 어린아이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든지, 밤마다 시체가 벌떡 일어나서 병원 안을 돌아다닌다든지, 수술 중 억울하게 죽은 환자의 원혼이 복수를 하기 위해 매일 밤 나타난다든지 하는 공포소설을 어렸을 때부터 접한 영향이 아무래도 컸지 싶다. 그래서 그런지 의학드라마는 즐겁게 볼망정, 병원을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에는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현역 의사이자 의학박사인 가이도 다케루가 쓴 이 [나이팅게일의 침묵]을 보면서, 병원이 등장하는 살인사건이지만, 이렇게도 유쾌하고, 이렇게도 슬프게 묘사될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유감이지만 나는 '다구치'와 '시라토리' 로 불려지는 이 콤비가 대활약을 했다는 전작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을 아직까지 읽지 못했다. 앞서 말한 '병원이 배경이었으니까' 가 가장 큰 이유이다. 하지만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을 읽지 않은 나같은 독자라도, 이 책을 읽는 데 큰 무리는 없다.  사실 이 [나이팅게일의 침묵]에 얽힌 비화가 있다. [바티스타..] 후 후속작을 준비하던 저자가 출판사의 편집자에게 내용이 복잡하고 원고 분량이 많다고 하자, 편집자가 책을 상하권으로 내는 것은 위험부담이 크므로 이야기를 둘로 나누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러자 정말 이 저자는 긴 이야기를 두 개로 나누어 편집자에게 냈다고 한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머지않아 나오게 될 [제너럴 루주의 개선]과 바로 이 [나이팅게일의 침묵]이다. 

주된 무대는 바티스타 스캔들로부터 9개월이 지난 시점의 도조대학병원의 소아과병동. 노래에 소질이 있는 간호사 사요는 송년회의 밤, 공연을 마치고 같이 근무하는 동료 쇼코와 거리로 나갔다가 전설의 가수 미즈오치 사에코와 그녀의 매니저 시로사키를 만난다. 라이브 공연을 열고 있던 사에코가 갑자기 피를 토하며 쓰러지자 사요와 쇼코는 도조대학 극락병동의 특실인 도어 투 헤븐에 그녀를 입원시키게 된다. 다구치는 사에코의 주치의로 임명되고, 부정수소외래를 하며 생활하고 있다. 한편, 소아과병동에는 망막아종으로 안구를 적출해야 하는 소년 미즈토가 아쓰시라는 소년과 함께 입원하고 있다. 열성적이고 성실한 간호사 사요는 병문안도 오지 않고 치료하는 데 필요한 동의서조차 작성해주지 않는 미즈토의 아버지에게 병원에 한 번 들러줄 것을 부탁하지만, 미즈토의 아버지 마키무라 데쓰오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그 다음 날 미즈토의 아버지는 토막난 시체가 되어 발견되고, 시라토리와 다구치, 경찰인 가노와 다마무라의 수사가 시작된다! 

제목이 의미하고 있는 것처럼, 이번 작품의 전체를 아우르는 소재는 '노래'다. 피를 토하면서까지 노래를 부른다는 새 나이팅게일이 의미하는 사람은 사에코인가 아니면 사요인가. 사에코는 정말 피를 토하며 쓰러졌지만, 사요는 마음을 쥐어짜며 노래를 부른다. 두 사람 모두 노래를 통해 듣는 상대에게 영상을 전달한다는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로 사에코가 어둠에 가깝다면, 사요는 빛에 가깝다고 느꼈다. 작품 안에 노래를 부르는 두 사람의 모습을 묘사하는 장면이 군데군데 나오는데, 마치 정말로 내 귓가에 음악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느낌이 자꾸 들었다. 그리고 이 '노래'는 결국 사건을 해결하는 열쇠가 된다. 

시라토리가 중후반이 되어서야 등장하기 때문인지, 사실 다구치와 시라토리가 콤비라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았다. 물론 다구치의 어눌한 것 같으면서도 정작 사건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점이나, 시라토리의 능구렁이같은 모습, 경찰 가노의 프로페셔널한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나는 어쩐지 그 주변 인물들에 더 눈이 갔다. 특히 다구치의 동료인 의사들에게. 이 책에는 현실에서도 그런 것처럼 가지각색의 의사와 간호사가 등장한다. 네코타 간호부장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으면서도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도 있고, 아이들에게 수염을 잡히고도 주사를 놓는 호호 할아버지 오쿠데라 교수가 있으며 사요처럼 열성적이고 따뜻한 간호사도 있다. 하지만 우치야마 기요미처럼 단지 돈을 벌기 위해 의사를 한다는 인상을 주는 사람도 있다. 분명 의사라는 직업 또한 사람이 더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선택하는 직업 중 하나지만, 보통 사람의 배짱으로는 해내기 어려운 일들이 수두룩하다. 그리고 사람의 목숨을 구한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숭고하고 아름다운 직업임에 틀림없다. 의사가 아닌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데, 의사나 간호사인 사람들이 자신의 직업을 좀 더 소중히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일까. 그렇게 한다면 분명 의료사고도 줄어들 것이고, 환자와의 관계가 더 아름다워질 것이라고 믿고 있다. 

안구를 적출해야 하는 병에 걸렸음에도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는 미소년 미즈토와, 아직 어리지만 용기있는 아쓰시, 슬프지만 아름다웠던 유키도 함께 해서 참 좋았던 인물들이다. 마지막은 어쩐지 내가 구원받은 듯한 느낌이 들어 눈물이 났다. 아~이렇게 재미있는 소설을 읽게 되어 정말 다행이다! 빨리 [제너럴 루주의 개선]이 나와줬으면 하지만, 일단 그 전에 다구치와 시라토리의 활약을 그린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부터 찾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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