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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대의 과학수사 X파일
이종호 지음 / 글로연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나는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미국드라마 CSI의 팬이다. 라스베가스를 비롯해 마이애미, 뉴욕 시리즈를 나름대로 주인공의 매력을 분석하고 각각의 독특한 분위기를 비교해가면서 즐기곤 한다. 사람이 살해되거나 사고를 당하여 사망하는 장면은 무섭기도 하고 끔찍하기도 하지만, 증거를 분석해서 범인을 잡아들이는 과정이 무척 흥미롭기 때문이다. 아마도 범인을 잡는데 한 몫하는 과학기술의 매력도 CSI의 인기요인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작년 하반기에 케이블 모 방송국에서 방영된 드라마 '별순검'을 무척 흥미롭게 봤다. 지금같은 발달된 기술이 없어도 예전부터 내려오는 책과 시대상을 반영하는 방법으로 범인을 밝히는 그 매력에 쏙 빠져들었다.
이 책은 드라마 별순검의 인기를 업고 나온 책 중 하나라고 보여진다. 케이블에서는 뚫기 힘든 1%의 시청률을 돌파하고 3~4%를 기록한 별순검의 이야기가 곳곳에서 눈에 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추리 수사의 탄생부터 별순검과 다모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범죄를 수사할 때의 왕들의 태도나 품격, 조선시대에 사용한 과학수사 책들을 소개하며, 조선시대의 법전과 사건일지, 형벌제도까지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책에 실린 내용은 모두 흥미롭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깊었던 내용들을 몇 가지 이야기해 보면, 별순검은 조선왕조 전 기간에 걸쳐 존재했던 제도가 아니라 대한제국 시대에 탄생한 관직이라고 한다. 드라마 '별순검'에도 일본 상인들과 신문 등 조선시대 초기에는 발견할 수 없는 문물들이 등장한다. 별순검의 주인공은 순검과 '다모'인데 다모는 의녀보다도 낮은 신분의 사람이었다고 전해진다.
한 가지 특이할만한 사항은 왕들이 법전을 외우고 법 사항에 능통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정조 10년 이영규가 김도흥을 발로 차 사망한 사건을 보면 자세히 알 수 있다 (p63) 저자는 이에 대해 제도가 성숙되어야 하고 또 그에 대한 시행 원칙과 지침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라고 말한다. 또한 조선시대의 수사관들이 과학수사를 하기 위해 사용한 책으로 [무원록], [증수무원록]과 같은 법학자료들을 토대로 했다고 하니, 서양보다 앞서있다고도 할 수 있는 그 과학적기법에 놀라울 따름이다.
조선시대를 관통하는 범죄수사의 원칙은 <반드시 진실을 밝혀 억울한 이가 없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원칙도 신분사회에서는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왕자나 권력의 핵심에 있는 인물들이 사건에 휘말렸을 때는 이를 감싸주려는 왕과 간신들의 모습에서 그것을 읽을 수 있다. 지금 사회에서도 돈이 많거나 연줄이 있는 사람은 사건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 밝혀져도 쉬쉬하며 넘어가는 일이 빈번하다. 세월이 흘러도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은 전혀 변하지 않는 것 같아 씁쓸했다.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 중의 하나는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모습은 똑같다는 것이었다. 치정에 의한 살인, 존속상해, 피해자는 거의 여성으로 한정되는 모습을 보면서 일어난 사건을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에서 본 조선시대 사람들의 인자한 얼굴 뒤에 흉악한 모습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니, 까닭모를 배신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래도,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그들의 생활을 알게 된 것 같기도 하다. 범죄를 어떻게 수사했느냐부터, 법전, 형벌제도까지 다루는 약간은 살벌한 이 책도 먼 옛날 우리 조상들의 지혜를 엿보는 지침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