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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친구 엘링입니다 - 시즌 1 ㅣ 엘링(Elling) 1
잉바르 암비에른센 지음, 한희진 옮김 / 푸른숲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시즌 3 [엘링, 천국을 바라보다] 로 처음 만난 연작소설의 주인공 엘링을, 시즌 1 [나는 내 친구 엘링입니다] 로 다시 만났다. 시즌 3의 엘링은 지금까지 읽은 책의 주인공들과는 무척 다른 성격의 소유자여서 적응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사회부적응자로 낙인 찍힌 그의 성격이 나에게는 오히려 유쾌하게 다가왔기 때문에 대체 이 소설이 처음 쓰여졌을 때의 엘링의 모습은 어땠을까 궁금해졌다. 시즌 3를 읽었기 때문에 곧바로 마지막편인 시즌 4로 넘어갈까도 생각했지만, 그것은 왠지 엘링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고민 아닌 고민 끝에 들어온 시즌 1. 그 안에서 나는 왠지 엘링과 조금 더 친해진 것 같다.
-엄마가 죽었다-로 시작되는 도입부. 지하철 안에서 처음 책을 펼친 나는 행여 누가 흘깃 보고 이상한 소설로 오해할까 봐, 황급히 글자를 읽어내려갔다. 엘링이 얼마나 슬펐을까를 생각하면서. 엄마의 가구와 옷들을 모두 정리하고, 텅 빈 엄마의 방에서 바깥은 내다보던 엘링은 화분에 물을 주는 리게모르 욜센에게서 엄마의 모습을 보고난 후, 주위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자신의 집 맞은 편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망원경으로 관찰하고 끊임없이 상상의 나래를 펼쳐가는 엘링. 어느 날, 자신이 상상했던 것과는 다른 욜센의 모습을 발견한 후, 갑자기 세상은 엘링에게 두려움과 혼란으로 다가온다.
엘링에게 익숙치 않은 사람에게는 책의 전개가 조금 낯설게 다가올 수도 있다. 전체 내용이 엘링과 다른 누구와의 대화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엘링의 공상과 생각만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찬찬히 그 생각의 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의 상상을 어느덧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또한 사회가 정한 기준에 의해 괴짜이고 사회부적응자로 취급받는 엘링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주관이 뚜렷하고 판단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에 대해 놀라게 될 것이다. 작가 잉바르 암비에른센은 책의 서문에서 엘링에 대한 기록이 '서구사회 인간을 우회적으로 묘사한 이야기로 읽혀질 수 있도 있는 현실'을 걱정하는데, 그것은 비단 서구사회 인간에 한정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외롭고 쓸쓸한 인간으로 여긴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왁자지껄 떠들며 킥킥대는 무리 속에서 고독을 보았던 것 같다. 껴안고, 어깨를 토닥거리고, 악수를 나누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고독을 읽었다. 함께 있지만 혼자라는 느낌.-p40
엘링은 다른 사람과 대화할 기회는 적지만, 그는 끊임없이 자신과 마주하고 자신과 대화한다. 무리지어 있는 사람들 속에서 고독을 발견하는 엘링은 어쩌면 무표정하게 지금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사람들보다 더 현명한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각자 자신 안에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고 있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해야 할지도 모른다. 무리지어 있을 때도 고독을 느끼는 우리이니까. 제목이 -네 친구 엘링-이 아니라, -내 친구 엘링-인 것도 이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은 아닐까.
책에 대한 평가가 어떻든, 나는 시즌 3에서와 마찬가지로 시즌 1에서도 나와 닮은 점이 많은 엘링과 웃고 울고 분노하고 대화하면서 무척 즐거웠다. 그의 터무니없는 상상과 탁월한 언변(늘 혼자 생각하고 있으므로 언변이라 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은 그러나 집을 빼앗기고 요양소에 보내질 운명에 처하면서 위기를 맞이한다. 과연 지금부터의 엘링의 삶은 어떻게 펼쳐질까. 요양소로 가도 엘링의 무한한 상상은 지구를 넘어 우주 끝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시즌2와 시즌 4로 엘링을 만나러 떠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