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거짓말
기무라 유이치 지음, 임희선 옮김 / 지상사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나는 연애소설은 구입하지도 않고, 잘 읽지도 않는다. 책 속에서 그려지는 남녀간의 사랑에서 느껴지는 것은 허무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행복하면 행복한대로, 비극적이면 비극적인대로. 그도 그럴 것이 '나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중에는 모래밭에서 바늘 찾는 격으로 몇 날 며칠을 가슴앓이하게 하는 이야기도 있는데, 말 그대로 그런 작품과 만나기는 쉽지 않다. 이 작품 또한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그리 깊은 감동을 준다거나, '내 책장에 꽂아 놓고 두고두고 읽어야겠어!'라는 생각을 갖게 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입으로는 연신 '유치해, 유치해. 끝이 다 보이잖아'하면서도 나는 책을 읽으면서 웃고 있었다. 

촉망받는 시나리오 작가로 다음 작품을 준비하고 있던 나카무라 나오키. 슬럼프에 빠져 무작정 기차를 타고 도쿄를 벗어나 하카타에 도착한다. 자신의 직업과 과거를 숨기면서  Dogwood라는 술집에서 바텐더로 일하게 된 나오키는 마음의 문을 닫고 건조하게 살아가지만, 어느덧 옆 라면가게에서 일하는 아가씨 고토미와 사랑에 빠진다. 나오키는 고토미와 보내는 행복한 시간 속에서 지루하고 재미없는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던 이웃들의 이야기에 감동받게 되고 그것을 시나리오로 만들어 친분이 있던 PD에게 이메일로 전송한다. 그저 아무 말 없이 도망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사죄쯤으로 여겨주길 바라면서 보낸 이메일은 급기야 드라마로 만들어져 방송을 타고,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나오키는 고토미에게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기 위해 기회만 엿본다. 하지만 피치못할 사정으로 도쿄로 훌쩍 떠나게 되는 나오키. 이제 초점은 나오키와 고토미의 사랑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맞춰진다. 

책을 손에 들고 몇 페이지만 읽어보면 금새 이야기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지 누구나 알아차릴 것이다.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유치해. 좀 지루하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끝까지 붙들고 있게 되는 것은 작품 속에 숨어있는 요소가, '따뜻함' 이기 때문은 아닐까. 누구나 원하지만 쉽사리 주위에서 느낄 수 없는 따뜻함.  사회가 발달하고 사람의 생활이 점점 편리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만큼 인간적이고 마음 따뜻한 사람을 만날 기회가 적어지는 것도 분명하다. 범죄율이 증가하는 것을 보면서 이웃과 통성명도 하지 않고, 하물며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자신의 이야기를 쉽사리 하지 못하게 된 현실만 직면하다가 작품 속에서 느껴지는 시끌벅적한 분위기와 마주했을 때는 가슴 속에 아련한 향수를 느끼게 된다. 이웃이 함께 모여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면서 위로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장소의 부재, 그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대단한 작품성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쉽게 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책 속에 등장하는 나오키와 고토미의 이웃들이 마치 내 이웃들처럼 느껴졌던 것도. 

100%는 아닐지라도, 작품을 통해 그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좋아했던 애니메이션 [폭풍우 치는 밤에] 와 이 책 [행복한 거짓말]을 통해, 왠지 기무라 유이치라는 작가는 마음 따뜻한 좋은 사람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판에 박힌 구성으로 이야기를 평범하게 풀어냈지만, 지금은 이걸로 족하다.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하지만 따뜻한 이야기도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은 아닐 테니까.


 이런 곳에 있는 사람들도 나름대로 각자 자기에게 솔직하게 모두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설사 그것이 촌스럽고 보기 흉해도 땅바닥을 발로 밟아가며 걸어가고 있다. 그렇게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인생의 맛이 진국이다.-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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