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라무슈
프로메테우스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책을 읽고나서 요즘 좀 우울했던 기분이 말끔히 가시는 것을 느꼈다. '그래, 인생 뭐 있어? 이렇게 재미있는 책 한 권씩 읽으면서 그저 물 흐르는대로, 내 마음이 향하는대로 살면, 그거면 됐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무래도 어떤 상황이 닥쳐도 절대로 당황하거나 허둥대지 않고 어떻게든 그 상황을 모면하는 스카라무슈, 앙드레 루이 모로의 성격을 그 새 닮아버린 모양이다. 읽어가면서 '헉, 헥, 이럴수가!'라는 탄성을 자아내게 한 작품, 바로 이  [스카라무슈] 다.

스카라무슈는 즉흥연극에서 까만 의상을 입고 항상 기타를 들고 나와 비굴하면서도 허풍 떠는 익살꾼 역을 일컫는다.(p-134)  주인공인 앙드레 루이 모로가 교수형의 위협에 쫓기면서 우연히 들어가게 된 극단에서 맡은 배역. 하지만 배역만을 나타내는 데 그치지 않고 앙드레 루이 모로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조롱할 줄 아는 재능과 세상이 미쳤다는 생각을 가지고 태어난' 앙드레 루이. 그는 대부 켕텡 드 케르까디유의 도움으로 법학을 공부하고 변호사로 일하는 똑똑하고 재치있는 인물이다. 어느 날 그의 친구 빌모렝이 다쥐르 후작과의 결투에서 목숨을 잃자 복수를 맹세하고 변호사에서 극단의 스카라무슈로, 검객에서 다시 정치가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소개되는 프랑스의 정치적 혼란과 앙드레의 로맨스는 과하지 않게 충분히 자기 역할을 해낸다. 

사실 이 작품에서 재미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프랑스의 정치적 상황이다. 어째서 앙드레의 친구 빌모렝이 다쥐르 후작과 결투하지 않을 수 없었는지, 앙드레가 빌모렝의 뜻을 이어받아 특권계급에 도전하게 되었는지, 검객에서 정치가의 길을 걸으면서까지 다쥐르 후작과 결판을 내고 싶어했는지를 그 상황에 따라 흘러가다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상황에 맞추어 때로는 선동가였다가, 때로는 배우, 또 때로는 검객과 정치가의 모습을 보여주는 앙드레의 모습은 읽는 이로 하여금 알 수 없는 통쾌함을 느끼게 해준다. 모든 위기 상황을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그를 보면서 '부디 무사하기를!'이라고 간절히 바라게 되는 것이다. 

앙드레의 매력은 겉으로는 밝은 척 하지만 비극적 운명을 짊어진 인물이라는 데 있다. 우리들이 삶에서 우연이라 부르면서 일어나기를 바라는 일들, 혹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일들이 앙드레라는 한 인물에게 투영되어 나타난다. '비극적 운명'이라는 아련한 단어가 그를 더욱 빛나게 하여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어느새 감정이입을 하게 되고 그를 괴롭히는 극단단장이라든가 속물적인 캐릭터 클리멘느가 망하게 될 때 마치 자기 일처럼 환호성을 지르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등장하는 여인들과의 로맨스, 출생의 비밀, 다쥐르 후작과의 악연이 어떻게 끝을 맺을지 궁금하게 하면서 책을 쥐고 읽는 사람의 마음을 한시도 가만히 두지 않는다. 한 마디로 이 작품은 한 번 책을 손에 쥔 독자를 절대로 놓아주지 않는, 최근에 만난 가장 흥미진진한 소설이다.  

이미 두 차례에 걸쳐 영화로 제작되었다는 사실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 작품 자체가 영화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기 때문일 것이다. . 번역을 잘 한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문장들이 모두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 책이 술술 넘어간다. 잠이 오지 않는 밤, 사나이들의 우정과 결투, 로맨스를 프랑스 역사와 함께 장대하게 느껴보고 싶은 분들, 이 기회를 놓친다면 후회할테니 꼭 읽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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