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엔젤 - 스탈린의 비밀노트,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2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
로버트 해리스 지음, 조영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나에게 있어 로버트 해리스는 히스토리 팩션의 전문작가라고 여겨진다. 히스토리 팩션이라는 장르 안에서 많은 책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역사의 어느 한 시점에 눈을 돌리고, 그 안에서 스스로 문제를 발견해 의문을 갖는 자세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 히스토리 팩션이 인기를 얻는 이유는 사람들의 '호기심'때문이다.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영원히 알 수 없는 역사 속의 진실을, 그래도 꼭 알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호.기.심. 그것이 바로 히스토리 팩션의 출발점이다. 

스탈린. 레닌의 후계자로 지목되어 반세기동안 전 소련을 독재적으로 지배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연합국과 손을 잡고 독일의 항복을 받아내기도 했지만, 1945년 원수가 되어 동구제국에 대한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미국과 대립함으로써 냉전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대내적으로는 반대자에 대한 탄압을 계속했는데, 책에서 묘사하는 그의 모습은 나에게는 미치광이로밖에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끔찍했다. 스탈린 사후 최초의 중앙위원회 총회에서 흐루시초프가 제1서기로 선출되면서 흐루시초프에 의해 스탈린 비판이 시작된다. 작품은 블라디미르 푸틴이 러시아의 대통령이 되기 전, 즉 옐친이 국가의 원수였을 때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러시아 학회 모임에 참석한 영국인 플루크 켈소는 우연히 파푸 라파바라는 정체불명의 노인에게서 스탈린의 임종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스탈린이 가지고 있던 노트를 자신이 숨겼다고 이야기하던 노인은 갑자기 사라지고, 그 이야기에 흥미를 갖게 된 켈소는 그를 찾아 헤매지만 라파바는 끔찍한 시체로 발견된다. 도대체 누가 무엇 때문에 그를 죽였는가를 생각해 볼 사이도 없이, 라파바가 그의 딸에게 단서를 남겼다는 것을 알게 된 켈소는 결국 스탈린의 노트를 발견한다. 그 노트에는 스탈린에게 연정을 느끼던 안나라는 소녀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고 이야기가 이끄는 대로 켈소와 미국인 기자 오브라이언은 그 소녀의 고향인 아크엔젤을 향해 떠난다. 러시아 북부의 항구도시로. 

[아크엔젤]을 읽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어려움을 예상해야 한다. 첫 번째는 '이름'이다. 러시아를 배경으로 하다보니 주인공의 이름을 제외한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한결같이 발음하기 힘들다. 매번 '~프'라고 끝나거나 이름이 여섯자를 넘어가는 경우는 그 이름이 그 이름인 듯하여 도통 책의 진도가 나가지를 못했다. 초반에는 배경설명이 주를 차지하고 있어 약간의 인내심도 필요하다. 두 번째는 러시아의 역사에 대한 인식이다. 역사를 전공했거나, 관심이 많은 사람에게는 문제가 될 수 없겠지만, 나처럼 수박 겉 핥기 식으로 역사를 공부한 사람에게 러시아의 근대사는 책을 읽는 데 커다란 장애물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속도감있게 휘리릭 넘어갔다. 도대체 스탈린의 비밀노트가 감추고 있는 진실은 무엇인가, 노트의 주인으로 판명된 안나는 대체 스탈린과 무슨 관계이며, 라파바를 죽이고 켈소를 추적하는 무리들이 비밀노트를 얻으려는 목적은 무엇인지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지만 모든 의문은 끝부분에서 하나의 매듭으로 완성된다. 

러시아는 지금의 러시아로 불려지기 전부터 세계의 강대국이라 일컬어져왔고, 미국과의 오랜 냉전을 유지했던 사회주의 국가였다. 책 속에서 묘사하는 것처럼 지금도 전 국민의 1/6이 죽은 스탈린을 지지하고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과거에의 회귀를 열망하고 있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과거는 과거로 남겨두고 현재를 현재답게 살아갈 때에 비로소 빛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과거에 집착해 아집과 교만을 버리지 못하면 발전은 커녕 도태되어 버리고 만다. 과거를 발판삼아 미래를 향해 나갈 줄 아는 지성이야말로 현재사회에서 가장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그 곳에는 반드시 평화와 공존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아크엔젤] 을 읽고나서, 냉전체제가 무너짐에 따라 자본주의의 물결에 급하게 휩쓸렸고, 서방세계는 러시아의 역사를, 러시아의 사회를 마치 자기네 것인양 취급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여부를 떠나서 나는 어째서 한 나라의 역사에 다른 나라들의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에 대해 괜히 마음이 아파왔다. 물론 세계는 하나가 되어가고, 어떤 국가도 자국의 힘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우리도 다른 나라에 의해 우리나라의 운명이 결정되었던 시기를 거쳤기 때문인지 남일같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한 때 전세계의 평화를 위협했던 스탈린. 그를 모티브로 마치 사실인 듯 쓰여진 이 책을 통해, 작가의 저력을 다시 한 번 실감한다. 커다란 스크린에서 러시아를 배경으로 숨가쁘게 전개될 이야기를 기쁘게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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