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이발소
야마모토 코우시 지음, 안소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하하. 표지를 보는 데 웃음이 났다. 발랄한 주황색 표지에 까까머리를 한 남자가 머리카락 대신 온갖 것을 머리에 매달고 이발소에 앉아있다. 표지만으로도 유쾌한 소설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흔히 여성들은 우울한 일이 생겼을 때 기분전환을 위해 미용실에 간다. 머리 스타일을 바꾸면 조금 전까지의 나는 어디론가 사라진 것 같고, 엄마 뱃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힘겨운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미용실은 여자들이 가는 곳, 이발소는 남자들이 가는 곳이라고 내 머리속에는 인식되어 있었지만, 이 책에서 이발소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찾아가는 엄마의 자궁 같은 곳이다. 게다가. 이발소 주인은 남자라는 내 상식도 훌륭하게 뒤집어 버리고 여성이 이발소 사장님으로 등장한단다. 

작품은 여섯 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단편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하나같이 다 기운이 없거나, 일상에 찌들어 삶의 보람도 없고,  전혀 인생을 즐기고 있는 것 같지 않다. 회사에서 아무 말도 못하고 시키는 일만 그저 해내던 <들개와 춤을>의 오오토모 고우타, 강도의 침입을 당한 전형적인 여성인 <호신술 입문기>의 이와세 가에데, 회사의 비리를 파헤치려다 해고당하고 자살을 기도했지만 기억상실을 당한 <암흑의 세계>의 미요시 오사무,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이리저리 취직하기 위해 바쁜 <마이 웨이>의 아오야기 마미,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못하고, 하기 싫은 일임에도 거절 못하는 성격의 <밀어버린 눈썹>의 주인공 스가와 사키, 마지막으로 퇴직하고 할 일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나팔꽃 골목>의 치히로의 할아버지까지. 주인공들이 이발소에 찾아가기 전까지의 생활을 보면 책을 읽는 내가 답답하고, 버럭 호통을 치고 싶은 마음에 한숨이 푹푹 나온다. 그런 그들이


 전에 함께 일했던 남편과 이혼하게 되면서 가게를 독차지하게 되었다는 것과 남자손님이 대부분인 이발소가 차라리 신경이 덜 쓰인다는 등의 이야기를 -p240
늘어놓는 여자 이발사에게 가서 머리를 자르기만 하면, 예전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  사장에게 자신의 의견을 큰소리로 말하기도 하고, 하기 싫은 일은 거절하기도 하며, 동네의 풍경을 바꿔버리기까지 하는 적극적인 사람이 되어 자신들의 인생을 즐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표지를 보고 하하 웃었다면, 책을 읽을 때는 그들의 변화한 인생을 나 또한 즐기면서 킥킥 웃게 된다. 큰 소리치는 그들의 모습에 내가 다 통쾌하고, 속이 뻥 뚫린다. 심지어는 나 또한 어디 이런 이발소가 있다면 당장 가서 머리 스타일을 바꾸고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마저 든다. 여자들이 우울할 때 미용실에 가는 것은 단순히 기분전환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남자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머리를 자름으로써, 거울 속에 비치는 새로운 나로 어제까지의 나쁜 일은 잊고, 새로운 날들을 즐겁게 살아가고 싶다는 소망이 담겨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많은 사람들을 매일매일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미용사, 혹은 이발사라는 직업이 참 멋진 직업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 -야마모토 코우시-는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났다. 작가소개를 읽어보니, [곰팡이]라는 작품에서는 평범한 주부가 대기업을 상대로 보복하는 헤프닝을 그렸다고 한다. [우리동네 이발소] 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통쾌한 인생역전을 그린 작품일 듯 하여 무척 궁금하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소재를 끌어와 사람을 이렇게 즐겁게 하다니! 아무래도 이 작가, 보통 사람이 아닐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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