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이라고 말하는 그 순간까지 진정으로 살아 있어라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지음, 말 워쇼 사진, 이진 옮김 / 이레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내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진정한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읽은 책에서 무엇인가 배울 수 있기를 희망하며,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하지만 때때로 게으름을 피우고, 짜증도 내며, 세상에 나에게 주어진 시련만큼 더 커다란 시련이 있을까를 괴로워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 '평범한'사람이기를 계속 거부해왔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이고, 내가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별이 될 수 있을 거라고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평범한 인생이 뭐 어때서'. 주어진 하루하루의 시간 속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사랑하며,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평범한 일상이 그 누군가에게는 가장 간절한 소망이 될 수도 있음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가슴으로 느끼지 못했던 그 단순한 진리를, 오늘에서야 진정으로 깨닫는다.  평범한 사람들의 위대한 마지막 삶을.

맨 처음 나를 맞이한 것은 한 여인의 사진이었다. 너무나 평화롭게 턱에 팔을 괴고 저 멀리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는, 조금은 늙어보이는 한 여인. 나는 그 여인이 저자인 줄 알았다. '아, 책을 낼 정도의 생각이 깊고, 유명한 사람은 이런 눈빛과 표정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책을 펼쳤지만, 순간 화들짝. 그 사진의 주인공은 42세의 나이에 시한부 판정을 받은 베스라는 여인이었다. 낙타같은 커다랗고 순수한 눈망울을 한 이 여인은 병에 걸린 것을 안 후에도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시를 쓰고, 아파트 근처 공원에서 햇빛을 받으며 책을 읽으면서 인생을 즐겼다. 

다른 여인의 사진이 나타났다. 휠체어에서 일어나 집안일을 하고, 의자에 앉아 그림을 그리며, 병상에 누워 있지만 행복하게 웃는 모습들이 차례로 지나간다. 병원에서 사회 복지사로 일하던 루이스는 유방암 판정을 받고 강제로 퇴직 당하고, 이혼을 하게 되지만, 자신의 남은 삶을 위해 집에서 치료를 한다. 병원에서는 인간다운 모습으로 치료받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그녀는 집 거실에 침대를 놓고 창 밖을 바라보며 따뜻하고 행복하게 마지막을 맞고 싶었기 때문이다. 

베스와 루이스 외에 병에 걸린 사람들의 사진이 차례로 지나가지만, 이상하게도 그들의 표정은 전혀 불행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무언가를 해내겠다는 일념 하나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고, 행복하게 웃고 있다. 한국드라마의 패턴이라고 여겨지는 불치병에 걸린 주인공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었다. -내가 만약 저런 병에 걸린다면 나는 남아있는 시간 동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는. 물론 처음에는 병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괴로워하겠지만, 결국 병을 인정하고 주변 정리를 하면서 조용히 살아갈 것이라는 것이 내가 생각한 전부였다. 하지만 책 속의 사람들은 모두 '조용한' 삶을 누리고 있지 않다. 마치 -나는 아직 살아 있어, 나에게는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남아있어-라는 것을 말하는 듯이 온몸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고 있다. 

저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죽음은 전혀 두려운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죽음을 병원에서 홀로 맞는 것보다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편안하고 행복한 집에서 맞는 것이 가장 좋다고 이야기한다. 만약 그녀가 단순한 에세이로서 이 책을 쓰고 그런 말을 했다면 나는 콧방귀를 뀌며-흥, 당신이 정말 죽음을 알아? -라며 비웃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마지막을 앞둔 사람들의 생활을 담은 사진과 글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죽음 앞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었던 것 뿐만이 아니라, 죽음과 당당히 마주해서 그 두려움을 이겨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드는 의문은 만약 우리 가족에게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는 과연 집안에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결정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살려두고 싶은 마음에 결코 병원을 떠나게 할 수는 없다고 되뇌이지만, 그 사람이 내가 되었을 때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 

죽음과 당당히 마주하고, 그들만의 세계로 행복하게 떠난 이들의 이야기는 순간순간 죽음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교훈을 주기에 충분하다. 죽음은 삶의 한 부분이라는 것. 죽음 없이는 우리 삶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진정한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도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것은  [안녕이라고 말하는 그 순간까지 진정으로 살아 있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언젠가는 나도 사진 속 여인처럼 평화로운 눈빛으로 세상을 응시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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