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나의 집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개인적으로 한국문학은 수사의 나열이라고 생각했다.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상황과 감정을 될 수 있으면 길게, 복잡하게 표현하는 것이 한국문학이라고.(그 부분에 있어 나 또한 마찬가지이지만)  서점에서 한국문학이 정체되고, 일본문학이 급부상했을 때 그것은 시대의 한 흐름이었다. 간단명료하고 쿨하게 표현해내는 일본문학의 간결함이 소비의 주체가 되어가는 젊은이들의 바람과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나 또한 한 번 읽어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심리적으로 복잡해지는 우리문학을 읽을 때보다, 일본의 작품을 읽을 때 좀 더 마음 편하게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즐거운 나의 집]을 읽고 난 지금, 역시 난 한국인이구나, 한국 사람에게 맞는 책은 역시 한국인이 지은 책이구나를 절실히 느낀다. 일본문학에서는 이처럼 깊고 절절한 삶의 이야기를 좀처럼 맛볼 수 없다. 

공지영님의 작품은 어렸을 때 사촌언니 집에 놀러가서 접한 [착한 여자]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멋모르고 읽어내렸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중학생이었던 그 때, 두 작품을 읽으면서 화가 났던 기억이 난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착한 사람인 거냐고, 이 사람은 착한 게 아니라 바보같은 사람이라고. 속으로 주인공을 비난하면서 그 당시 소설이 그려내던 한국 여자들의 비참하고 한결같은 인생에 대해 회의를 느꼈다.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 여자의 인생이라면 앞으로의 내 인생에도 빛이라는 단어가 없어지는 순간이 있을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에 공포마저 느꼈다. 인내하고 견디는 삶을 그렸던 것이 바로 그 [착한 여자]였다면, 조금은 달라진 현대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 바로 [즐거운 나의 집]이다. 

주인공은 재혼한 아빠와 살다가 엄마 집에서 함께 살기로 결정한 18세의 위녕. 아니 주인공은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이다. 엄마는 이미 세 번의 이혼을 한 상태이고 성이 다른 둥빈과 제제라는 동생이 둘이나 있다. 엄마는 발랄하고, 삶은 바로 자유라고 여기는 사람이지만, 때때로 고독감과 외로움과 싸우며 글을 쓰는 작가다. 작가로서 성공했지만, 때로는 위녕의 딸같으면서 또한 울고 고민하는 모습은 여느 집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엄마와 아빠의 이혼과 재혼을 지켜보며 이미 너무나 조숙해져버린 위녕은 그러나 역시 아빠에게 이해받고 싶고, 엄마에게 사랑받고 싶은 딸이다. 작품은 이 사회에서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가정과 가족의 모습을 담담하지만,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들더라. 혹시, 아무 생각도 없는 거, 그게 좋은 가정이라는 게 아닐까. 그냥 밥 먹고, 자고, 가끔 외식하고 가끔 같이 텔레비 보고, 가끔 싸우고, 더러 지긋지긋해하다가 또 화해하고, 그런 거..누가 그러더라구, 집은 산악인으로 말하자면 베이스캠프라고 말이야. 튼튼하게 잘 있어야 하지만, 그게 목적일 수도 없고, 또 그렇다고 그게 흔들거리면 산 정상에 올라갈 수도 없고, 날씨가 나쁘면 도로 내려와서 잠시 피해 있다가 다시 떠나는 곳, 그게 집이라고. 하지만 목적 그 자체는 아니라고. 그러나 목적을 위해서 결코 튼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이라고. 삶은 충분히 비바람 치니까. 그럴 때 돌아와 쉴만큼은 튼튼해야 한다고. -p270
때때로 함께 웃고 함께 먹는 가족들을 보면서, 가족이란 대체 뭔가 생각할 때가 있다. 가만히 불러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 항상 내 뒤에서 든든하게 나를 지원해주지만 가끔 뜻이 안맞아 티격태격 싸움도 하는 것. 어떤 잘못을 저질러서 세상 사람들이 다 나를 욕해도 이 사람들만은 나를 감싸주겠지라는 믿음이 있는 것. 달콤하면서도 때로는 쌉싸름한 것. 가족 구성원이 누가 됐든, 설사 다른 성을 가진 사람이 세 명이나 되더라도 가족이라는 이름 하나로 모여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축복이다. 위녕, 둥빈, 제제라는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사랑 하나로 모여 사는 것. 그것이 가족일 게다. 

그럼에도 한국사회의 편견이라는 것은 참 무섭다. 이혼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모두 문제아가 된다는 인식은 쉽게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 주일마다 성당에 가서 신부님 말씀을 듣고 오는데, 내가 무심코 들으면서 끄덕였던 말들이 이 책에 나와 있어 놀라웠다. 더 놀라웠던 것은 어떻게 그런 생각을 아무 비판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일까 하는 점이다. 여성이 조금만 참고 살면 가정은 유지되지만, 참지 못하고 살면 그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문제아라고 단단히 못박고 있는 부분에서 '이런 생각없는 신부님같으니'라고 욕하면서도 정작 나 자신은 평소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무서워진다. 

가정은 남자와 여자가 함께 일구어가는 텃밭같은 장소다. 모든 일에 노력이 필요하지만 가장 노력이 필요한 장소가 가정이라고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은 완전히 이해하고 알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은 말한다. -저 사람은 나와 달라, 도무지 성격이 맞지 않아.- 당연하다. 최소한 20 여년을 넘게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상대에 맞추어 살아가기란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일지.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한 쪽의 노력만으로는 가정이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많은 것이 또한 변해가지만 사람들 안에는 결코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는 그 무엇인가가 있나 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와 다른, 다르지만 틀리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을 우리 자신의 잣대로 재고 평가하려고 하나 보다. 

작품에서 그리고 있는 가족의 모습이 올바르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나는 여전히 이혼이라는 것은 안 할 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가족의 모습이 있다는 것을, 그 사람들도 가족이라는,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하나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인정해줘야 한다. 어떤 평범하지 않은(사람들이 정한 평범의 기준은 어디까지일까) 이야기를 들어도 '뭐, 어때. 그럴 수도 있지'라며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닐까. 

 처음 공지영님이 세 번이나 이혼한 사람이라는 기사를 접했을 때 참 많이 놀랐다. 내가 그리고 있던 이미지는 어느 새 저멀리 훨훨 날아가버리고 세상 속에서 나와 같이 살아가고 있는 그의 모습이 그제야 제대로 보였던 듯도 싶다. 그리고 생각했다. 세 번이나 이혼한 것을 감히 내가 아픔으로 말해도 된다면, 그러한 과정이 있었기에 이런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이라고. 책이 완전한 그녀의 삶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녀의 삶과 아픔들을 조금쯤은 읽어낼 수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공지영님의 글에 감탄하게 되는 것은 내가 생각하고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을 항상 그녀가 콕 집어 대신 해준다는 데에 있다. 내 안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는 모든 감정과 생각들이 그녀의 문장 하나로 간단하게 정리되어 버린다. 한 권의 책 속에 내가 생각하고 느꼈던 모든 말들이 다 들어 있을 수 있다니, 참 놀랍다. 그래서 그녀는 나에게 일반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공지영'씨'가 아닌 공지영'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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