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정말 미안해 - 미처 다하지 못한 이야기
김현태 지음, 조숙은 그림 / 두리미디어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흔히들 엄마와 딸의 관계는 '애증'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된다고 한다. 사랑과 증오의 관계. 한없이 사랑하지만, 또 한없이 미워하고 닮지 않으려고 하는, 이상하다면 이상하다고 할 수 있는 관계가 바로 엄마와 딸의 관계라고. 내가 딸이라서 그런지 나는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나와 우리 엄마 사이에 심각하게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일상 속에서 티격태격하고, 가끔 나중에는 후회하면서 순간을 못이겨 짜증을 내기도 하지만, 딸과 엄마의 관계 속에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자리잡고 있다. 그런 나의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엄마를 떠올렸기 때문에 이 제목을 보고 쉽게 뿌리칠 수 없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부르기만 해도 괜히 울컥해지는 사람은 세상에 많지 않다. 

제목은 [엄마, 정말 미안해]이지만,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비단 엄마와 자식간의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게 될 삶의 이야기, 친구와 부부와 부모자식 사이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상을 마치 수채화처럼 맑고 깨끗하게 그려내고 있다. 딸을 위해 쌓인 눈 사이로 길을 낸 <엄마가 만든 길>, 돌아가신 엄마가 담긴 비디오를 보며 그 그리움을 절절히 쏟아내는 <엄마, 정말 미안해>, 초등학교를 졸업하게 되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그린 <할머니의 졸업장>, 크리스마스날 칼국수를 공짜로 얻어먹고 삶의 희망을 찾아내는<칼국수와 실장갑> 등의 이야기들이 이 겨울에 꽁꽁 언 우리의 몸과 마음을 스르르 녹여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의식을 깨우는 듯한 글귀들은 정말 주옥같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너무나 가까운 사람이기에, 너무나 쉬운 사람이기에 혹시나 소홀히 대하진 않았는지요. 소중한 것은 늘 잃은 후에 그 가치를 알기 마련입니다. 함께하는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사랑해야 합니다. 마음을 나눠야 합니다. 주고 싶어도 줄 수 없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음이 얼마나 가슴 저미는 일인 줄 안 다음에는 이미 늦습니다. 지금이 가장 사랑하기 좋은 날입니다. 안아 주기 가장 좋은 날입니다.-p36

라고 끝을 맺는 <엄마, 정말 미안해>는 특히 더 가슴이 쓰리고 아팠다. 내가 중고등학생 때, 이렇다 할 사춘기는 없었지만 한창 예민했던 시기에,  엄마한테 매우 소홀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이야 엄마가 -아이고, 우리 딸 없었으면 엄마가 너무 힘들었을거야. 딸 없는 사람들은 정말 안됐어-라는 말씀을 하실 정도로 우리 사이가 각별하지만, 예전의 나는 그저 내 일로 머리가 한 가득이어서 주변 사람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아침 일찍 학교 가서 야간자율학습을 끝내고 돌아오면 밤 11시는 되었으니, 솔직히 얼굴 보고 이야기할 시간도 부족했던 것이다. 엄마가 한 마디 하시면 잔소리로 여기고 무척 듣기 싫어했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 내 마음이 변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귀여워 보이기 시작했고,  엄마가 잔소리를 해도 그저 -네~-하고 넘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엄마도 예전에는 내가 엄마를 봐도 본척만척 했다며 내가 많이 변한 것 같다고 하셨을 때는 정말 죄송스러웠다. 물론 지금도 티격태격하는 건 마찬가지지만, 서로에게 무한한 애정을 느끼고 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우리에게 있어 엄마는 가장 가까운 존재지만, 우리에게서 가장 대접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항상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것이 엄마의 역할인 줄 알았다. 엄마니까, 나는 자식이니까 당연히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를. 엄마는 지금 내 나이 때 결혼하셔서 나를 낳으셨고, 살림을 꾸려오셨다. 나는 지금 부모님이 어서 결혼해야지 하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다. 엄마의 그 역할을 내가 엄마처럼 훌륭히 해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자기 곁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는 일이다. 한 사람에게서 아무 조건없이 받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다른 곳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임을 마음으로 느끼는 일이다. 소중한 사람이 사라지기 전에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되어 나는 참 행복하다. 어쩌면 때로는 그 사실을 또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때마다 기억해내고, 또 기억해내서 영원히 잊지 않도록 가슴 속에 잘 묶어둘 것이다.  늦기 전에 우리 모두 자신의 곁에서 웃어주고 있는 부모님께, 혹은 소중한 사람에게 우리 가슴 속에 자라고 있는 사랑을 내보일 수 있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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