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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오거스트의 열다섯 번째 삶
클레어 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반타 / 2025년 10월
평점 :

**네이버 독서카페 '리뷰어스클럽'을 통해 <반타>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다양한 매력이 돋보이는 SF 소설]
아이들이 죽음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더불어 '영원한 삶'이라는 주제로 자주 이야기하는 편이에요. 예전에 한창 뱀파이어 로맨스물이 유행했을 때는 이렇게 좋아하는 책 읽고 하고 싶은 공부하며 살 수 있다면 영원히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었어요.(지금보다 아주 어렸을 때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영원한 삶, 반복되는 삶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요. 우리의 시간은 유한하고, 지금 하는 경험이 오직 한 번 뿐이기 때문에 더 소중하고 애틋하게 느껴지는 것이겠죠.
주인공이 영원히 사는 뱀파이어든, 참혹한 현실에서 과거로 돌아가는 회귀물이든 시간여행과 관련된 판타지물은 꽤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해리 오거스트의 삶은 상상을 넘어서네요. 해리 오거스트는 1919년 1월 기차역에서 태어났습니다. 헐른 가에서 일하던 어머니와 그 집의 주인인 로리 헐른 사이에서 태어났죠. 해리의 어머니는 해리를 낳다가 세상을 떠났고,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짤막하게 마무리되었지만, 부당한 권력 관계로 얻은 아이에 대해 그녀에게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어요. 양부모 손에 의해 길러져 귀족의 장원을 관리하던 일을 하던 해리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1989년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태어났어요. 1919년 1월, 바로 그 기차역 화장실에서 또 다시 생을 시작합니다. 예전 삶의 기억을 그대로 간직한 채. 그런 해리의 삶은 반복됩니다.
절로 '히익' 소리가 나오는 설정이라고 생각해요. 예전 삶의 기억을 그대로 간직한 채 똑같은 시간대를 반복하는 것. 너무 무서울 것 같아요. 두 번째 삶에서 해리는 자신이 미쳤다고 생각하고 결국 정신병원에서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하고, 세 번째 삶이 시작되었을 무렵부터는 끝없이 반복될 자신의 운명에 대비하기 시작합니다.과연 이런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해리처럼 끝없이 반복된 삶을 사는 '칼라차크라'와 그들이 만든 '크로노스 클럽'의 존재를 알게 되고, 역사에 개입하는 것을 금하는 그들의 규칙을 따르게 되죠. 하지만 해리 앞에 인류의 미래를 완전히 바꾸고자 하는 빈센트가 나타나고, 해리는 일종의 '신'이 되고자 하는 빈센트에게 매력을 느끼지만, 결국 인류의 운명을 걸고 그와 대립합니다.
다양한 매력을 지닌 작품이에요. 인류종말과 존재에 대해 고민하는 철학적 서사시이자, 흘러가는 역사를 그대로 두려는 사람들과 그 흐름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긴장감있게 그려내며 긴장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여기에 인류의 미래를 두고 겨루는 해리와 그 반대편에 서 있는 빈센트의 대립을 흥미진진하게 담아냈어요. 또한 영원 불멸의 삶을 사는 이들의 도덕적 책임, 여러 윤리적 문제, 다양한 지식이 흘러넘치는 지적인 매력까지 꼼꼼하게 짚어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주의 운명을 걸고 싸우면서 서로 속고 속이는 두 사람의 이야기. 과연 여러분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지 궁금하네요. 아무튼 저는, 그냥 현생에 만족하며 지금 이 순간 열심히 살아가겠다는 단순한 다짐을 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