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필요한 주문
지수현 지음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남자와 여자가 친구가 될 수 있는 비밀(?)을 라디오에서 들은 적이 있다. 하나는 서로를 단순히 친구로만 여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상대에게 사랑을 느끼는 사람이 우정이 깨질까봐 그 사랑을 숨기는 것이었다.  두 번째의 비밀을 들었을 때 참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곁에 있기 위해 자신의 사랑을 숨겨야만 하는 사람.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외롭고 쓸쓸한 사람이 아닐까. 나는 개인적으로 남자와 여자는 친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자꾸 만나고, 이야기하고, 세월을 나누다보면 정들어버리는 것이 사람이니까. 

 연주와 경주도 14년이란 오랜 세월동안 친구로만 지내오다 연인이 되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멀미"가 이들에게도 약점이다. 그 "멀미"가 그들을 친구로 만들어주었고, 결국은 경주가 연주에게 마음으로 다가가는 계기가 되었다. 14년의 친구 생활을 청산하고 바로 연인으로 지내는 것이 나에게는 어색할 것만 같은데, 이들은 너무 오랜 세월을 친구로 지내온 것이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한 듯 하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사랑도 세상의, 사람의 '편견'때문에 결국 이별을 맞이한다. 그리고 1년여가 지난 지금, 그들은 자신들의 앞에 다시 나타난 그 사랑을 거부할 수 있을까. 

 조근조근한 대화체로 쓰여 있는 이 책은 단순히 소꿉친구의 우정에서 사랑으로 변한 이야기만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닌 듯 하다. 연주는 술주정뱅이에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아버지를 증오하지만, 뼛속까지 아버지를 미워하지 못한다. '아버지'라는 이름 하나로 괴팍한 그 노인은 연주에게 증오의 대상이자 사랑받고 싶은 소중한 사람이 된다. 항상 아버지에게 구박을 받으면서도 병에 걸린 남편을 내버려두지 못하고, 해달라는대로 다 해주고 마는 연주의 어머니는 어쩌면 우리가 사는 모습과 가장 비슷하다. 달아나고 싶어도 달아날 수 없는 현실이지만, 그래도 막상 달아나버리면 아쉬운 것. 그것이 우리의 인생이니까. 콩가루 집안이지만, 그렇게 아둥바둥 살아가는 연주네 집은 현실 속의 보통 가정, 바로 그것이다. 

 오랜 친구사이였던 사람이 여자로, 남자로 보이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이것은 아마도 우리가 절대 풀 수 없는 몇 가지 문제 중 하나일 것이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 이야기도 할 수 없다. 오직 그 답을 알 수 있는 것은 살아온 삶을 정리할 때, 추억할 때일 것이다. 아직도 사랑에 대해 모르는 것이 더 많아 감히 뭐라고 말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지만,  친구가 여자로 혹은 남자로 보이는 것, 그것 또한 인연이자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연주와 경주의 이야기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고,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삶을 버텨내고 살아내는 것. 그러기 위해 우리는 각자 자신들만의 힘을 내기 위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스스로를 다독이는 말, 혼자 깊은 밤 화이팅을 외치는 것, 누군가에게 기대어 위로의 말을 듣고자 하는 것. 불행하지 않도록, 강해지도록, 다시 태어나도록 우리에게는 정말 주문이 필요하다. 그 주문이 효과가 있든없든 사랑을 위해, 자신들의 소중한 삶을 위해 각자 자신만의 주문을 외워봐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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