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를라 기담문학 고딕총서 8
기 드 모파상 지음, 최정수 옮김 / 생각의나무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깊은 밤, 나는 꿈을 꿨다. 희뿌연 안개가  온 방안을 뒤덮고 있는 그 공간 사이로, 누군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꿈. 머리로는 -이건 꿈이야, 어서 일어나야 해-하며 몸부림쳐보지만, 쉽사리 잠에서 깰 수가 없었다. 차라리 아무 생각없이 잠들어버리기를 기도하던 중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나는 내가 왜 그런 꿈을 꾸었는지 단번에 알았다. 내 머리맡에 바로 이 책, 기 드 모파상의 [오를라]가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기 드 모파상은 나에게 [여자의 일생]이라는, 어린 시절 읽은 책의 작가였다는 사실로만 기억된다. 안타깝고  마음 아프고, 답답하면서, 나는 꼭 이렇게 살지 않겠다는 기억을 남겨준 [여자의 일생].  하지만 [오를라]에 담겨있는 작품들은 어쩐지 몽환적이고, 섬뜩하고, 훨씬 더 우울하다. 표지에 그려져 있는 희미한 사람의 그림자처럼. 

 기담문학 고딕총서의 8번째 이야기  [오를라]에는 총 9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그 중 가장 무섭고 인상깊었던 작품은 <박제된 손>과, <마드무아젤 코코트>, 그리고 <산장>이었다. <박제된 손>에서는 한 남자가 이미 죽은 어떤 늙은 마법사의 박제된 손을 가져와 그것을 자기 집 현관 초인종으로 쓰겠다며 시작된다. 그를 바라보는 친구가 이 글의 서술자로, 어느 날 그 박제된 손을 가져간 친구가 누군가의 공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친구의 집으로 달려간다. 친구는 목에 심한 상처를 입고 정신착란을 일으키다가 손이 자기를 공격한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결국 죽는다. 그리고 친구의 시신을 묻으려고 땅을 파던 중 늙은 마법사의 시신으로 보이는 해골을 발견하고, 그 옆에는 잘려 나간 손목이 놓여 있다. <마드무아젤 코코트>는 애완용 개인 코코트가 가진 심각한 결점으로 인해 코코트를 물에 빠트려 죽인 후, 부패한 시신을 멱을 감으러 간 강에서 발견하고 미쳐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산장>은 한 겨울 내내 산장을 지키는 산장지기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사냥을 하러 갔다가 돌아오지 않자, 나머지 다른 한 사람이 찾으러 나가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죽은 다른 산장지기의 환영에 시달리다 미쳐버린다는 이야기다. 

 다른 작품들이 이 작품들에 못미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이 세 작품이 유독 무서웠던 것은 인간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근원적인 공포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박제된 손>은 그렇다치더라도, 단지 발정기가 계속된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에게 폐가 되기 때문에 개를 죽인 남자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공포, 죄없는 생명을, 자신을 믿고 있던 동물을 물 속에 던져버리고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그 시신을 육십리외나 떨어진 곳에서 다시 만났을 때의 공포는 상상하고도 남는다. 또한 <산장>은 아무도 없는 곳, 자신과 다른 한 사람 뿐이었던 고립된 곳에 둘이 아닌  홀로 남겨졌을 때의,  두려움이 극도의 공포감으로 증폭되는 분위기를 감탄이 나올 정도로 잘 그려냈다. 인간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앉아서, 평소 때는 그 모습을 보이지 않지만 한 번 마음의 수면 위에 떠오르면 쉽사리 놓아주지 않는 깊은 두려움들이 작품들 안에 눈을 번뜩이고 있다.   

 기 드 모파상은 공포의 대상이 되는 존재를 -이것이다!-라고 눈 앞에 바로 들이대지 않는다.  글을 읽는 동안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한기와  대상이 뚜렷하지 않은 상태에서 느껴지는 공포는  꿈 속에서까지 나를 괴롭혔다. 직접 눈 앞에 보여지는 것보다 정체를 알 수 없을 때의 무서움이 한 층 더 심한 법이다. 또한 과장되지 않고, 마치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이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는 문체 때문에 괴기스러움은 한층 심해지고, 극적인 분위기가 더욱 생생하게 살아난다. 

[오를라]를 읽으면 세상에는 좋을 일은 하나도 없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그만큼 우울하다. 하지만 기 드 모파상이라는 유명한 작가의 정신세계가 궁금하다면, 한 번쯤 읽어볼 것을 권한다. 단, 깊은 밤에는 읽지 않는 것이 좋겠다. 그의 잔영이 꿈 속까지 따라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당신을 괴롭힐지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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