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타이 도쿄 - 핸드폰으로 담아 낸 도쿄, 그 일상의 세포
안수연 지음 / 대숲바람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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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은 뒤 내가 느낀 첫 번째 감정은 "질투"였다. 책을 쓴 저자에 대한 질투. 10년 이상 카피라이터로 일을 했음에도, 주저없이 털고 일어나 사진을 공부하겠다고 일본으로 날아간 사람. 나와는 달리 가깝다면 가깝고, 멀다면 먼 그 타국 땅에서 2년 동안 용기로 가득찬 삶을 살았던 사람. 그리고 나서  찾아온 감정은 "그리움"이었다.  

내가 일본에 갈 때 나는 용기없고, 숫기없는 대학 2학년생이었다. 부모님 품 안에서 병아리마냥 살다가 난생 처음 집을 떠나 나 혼자만의 생활을 꾸려보겠다고 떠났던 때. 그렇게 가서 두 주먹 불끈쥐고 세차게 살았다면 좋았으련만, 나는 그렇게 살기에는 아직도 덜 자라 있었다. 사람에 대한 낯가림도 있었고, 무엇보다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했으며 "1년만 지나면 집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기를 꺼렸다. 주위에서 외로움 때문에 남자, 혹은 여자친구를 만들었다가도 돌아갈 때 헤어지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고, 동성끼리도 한국으로 돌아가면 연락을 끊는 상황을 많이 들어서인지 그런 나의 생각이 옳다고만 믿었다. 그 때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고 믿었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는 그 때도 외곬수에 철부지였구나 싶다. 

저자 안수연은 10년 이상을 카피라이터로 일했다고 한다. 그러다 사진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해 무작정 일본으로 갔다고 하니, 그 용기가 참으로 부럽다. 케이타이(휴대전화)로 찍은 작은 사진들에 그녀의 맛깔나는 코멘트까지 덧붙여져, 여느 에세이와는 다른 차별성을 띠고 있다. 그녀의 머릿속을 몰래 들여다보는 느낌이랄까. 잘난척을 하며 써내려가는 여타의 에세이집보다 친근했고, 공감가는 내용이 많다. 많이 알려진 겉모습보다 색다른 모습을 조금이라도 엿보고 싶다면,  읽어보시기를.

그렇게 책을 읽어내려가다보니, 익숙한 냄새가 코끝에 스민다.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풍겨져나오는 일본의 냄새. 나만이 맡을 수 있는 거리의 냄새, 풍경의 냄새, 도시의 냄새가.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내가 예전에 살았던 그 도시에 있는 것 같았다. 북적이는 신주쿠와 시부야 거리,  7시만 되도 가게문을 다 닫아 한산했던 동네, 그 때는 멀게만 느껴졌던 역에서 기숙사까지의 거리, 거리에 흩어지던 벚꽃과 즐겨 찾았던 중고 책방..가슴 한 쪽이 싸해지면서 불현듯 다시 간다면 예전보다 더 잘살 수 있으리라는 근거없는 용기가 생긴다 . 

일본에 있던 어느 날 저녁 기숙사로 돌아가는데, 몇 개의 방에 켜진 불빛이 새어나오는 그 건물이 그렇게 삭막하게 보일 수가 없었다. 세상에 나와 기숙사 건물만 있었던 것 같은 이상한 느낌. 아침에는 괴물같은 까마귀가 까악-까악- 울어대며 쓰레기통을 뒤지고,  가면을 쓴 것 같은 단조로운 사람들 표정에, 모든 일에 괜히 겁이 났던 불쾌한 느낌.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고, 외로움과 쓸쓸함의 슬픔을 알았던 곳이어서 한국으로 돌아가도 일본을 그리워하는 일은 없을 거라 믿었는데, 나는 돌아오는 비행기에 탄 순간부터 그 곳을 그리워했다. <매력이란 그런 것이다. 처음 마주쳤을 땐, 이게 뭐야 하고 눈살을 찌푸릴만한 것도 자꾸 보면 눈에 익고 다정해 보인다는 것. 매력을 느끼는 취향에 있어서 영원불변한 테이스트란 없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나는 어느새 도쿄의 매력에 빠져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에 그 곳이 이토록 그립게 느껴진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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