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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선 - 뱃님 오시는 날
요시무라 아키라 지음, 송영경 옮김 / 북로드 / 2025년 1월
평점 :
** 네이버 독서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북로드>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윤리와 생존 속에서 당신의 선택은??!!]
에도 시대, 어느 작은 어촌 마을. 이 마을 사람들은 날씨가 흐릴 때면 한밤중에 바닷가로 나가서 가마솥에 소금을 태우며 제를 올립니다. 언뜻 보면 지나가는 배들이 풍랑에 휩쓸리지 않고 안전하게 마을 부둣가에 정착하기를 기원하는 듯 하지만, 사실 그 배가 난파되기를 유도하는 행위에요. 난파된 배에 실려 있는 쌀과 다양한 물품은 마을 사람들을 굶주리지 않게 해주고 이웃 마을에 하인으로 팔려가지 않아도 되게 해주기 때문이죠. 마을 사람들은 파선을 ‘뱃님’이라 부르며 겨울마다 뱃님이 마을을 찾아와주기를 간절하게 바라게 됩니다.
그런 방식으로 찢어지게 가난한 일상을 이어나가던 마을 사람들은, 어느 해 2년 연속 떠내려온 배 덕분에 완전히 달라집니다. 작년에는 쌀과 설탕이 가득 실려 있더니, 올해에는 붉은 비단옷 차림으로 죽은 사람들이 잔뜩 실려 있는 거에요. 다른 옷감보다도 훨씬 귀한 취급을 받는 붉은 비단. 아무리 그래도 저라면 죽은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에 손도 대지 못할 것 같은데, 마을 사람들은 시체들의 몸에서 옷을 벗겨 나눠 가지고 즐거워합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부터 소름이 돋더라고요. 그 후 마을을 덮친 역병!!
요시무라 아키라는 1923년 일본에서 일어난 '관동대지진' 을 소재로 쓴 동일제목의 작품으로 유명한 작가입니다. '대지진에 의한 사회적 혼란, 집단적 정신 이상에 의한 학살' 이라는 결론을 낸 작품이라고 전해지는데요, 이번에 번역 출간된 [파선] 에서도 대대로 무리지어 살아온 마을에서 상식은 통하지 않고 오로지 조상들의 관습에 따라 삶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세밀하게 그려냅니다. 초반에만 해도 시신들의 몸에서 붉은 비단을 벗겨내는 사람들을 보며 '어떻게 저럴 수 있지'라는 생각이 더 강했는데, 뒤로 갈수록 과연 나는 같은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가 되짚어 보게 됐어요. 상식이고 양심이고 간에 당장 나와 내 가족들이 죽을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체면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습니다.
작가는 경솔하게 도덕적 판단을 내리지 않아요. 선택은 오로지 독자의 몫입니다. 배덕을 선택하고 살아남기를 희망한 사람들. 당신의 선택은 어떠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