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누비스의 문 1 - 털에 뒤덮인 얼굴
팀 파워즈 지음, 이동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어렸을 때 내 환상의 중심은 -시간여행-이었다. 주전자 타임머신이 나오는 만화를 너무 좋아해서 그 주문을 항상 입에 달고 살았던 기억이 난다. 급기야 저주에 의해 3000년 전의 고대 이집트로 끌려가버린 여주인공을 중심으로 사랑과 음모의 소용돌이를 그리는 어떤 책을 읽고 내 환상은 급격히 커져버려,  나도 고대 이집트로 한 번 가보는 것이 소원이 되어버렸다. 고대의 상형문자, 파피루스, 나일 강가에서 불어오는 바람, 피라미드, 여러 유적들..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찬 어린시절의 그 소망은 사라지지 않고 아직도 내 안에 남아있다. 그런데  그런 나의 소원을,  장소는 다르지만, 아주 간단히 이루어버린 사람이 있다!

브렌던 도일은 시인 콜리지의 전기를 썼으며, 영국의 시인 윌리엄 애쉬블레스를 연구하는 미국 영문학자다.  어느 날 문화 사업의 대부호인 J.코크런 대로가 발견한 시간의 틈새로 콜리지의 강의를 듣기 위해 같이 시간여행을 떠나게 되지만,  이집트의 마법사 닥터 로마니에 의해 현대로 돌아오지 못하고 과거에 남게 된다.  닥터 로마니는 도일이 이용한 시간의 틈새를 찾아내어 과거로 돌아가, 과거 영국의 이집트 지배를 막고 영국을 멸망시키려는 것이 목적. 그의 동료 아메노피스 파이키는 마스터의 주문에 의해 이미 아누비스가 빙의되어 -개 얼굴 조-라는 이름으로 다른 이들의 몸을 빼앗아 살아가고 있다. 닥터 로마니의 습격으로 부상을 당하고, -개 얼굴 조-의 공격으로 윌리엄 애쉬블레스로 살아가게 된 도일. 어찌된 영문인지 현대로 돌아갔다고 생각한 대로마저 다시 나타나 도일의 생명을 위협한다.

아누비스는 이집트의 신으로, 저승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 죽은 자를 오시리스의 법정으로 인도하며, 죽은 자의 심장을 저울에 달아 살아 생전의 행위를 판정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한다. 아누비스의 문이란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문이며, 그것은 곧 시간의 틈새가 되고, 도일과 닥터 로마니가 대립할 수밖에 없는 매개로 작용한다.

시간의 틈새라는, 인간이 거부할 수 없는 매력적인 요소 때문일까. 작품에는 그 시간의 틈새에 매달린 등장인물이 끝도 없이 등장한다. 주인공인 도일부터, 영국을 멸망시키려는 닥터 로마니와 그의 마스터, 개 얼굴 조, 개 얼굴 조에 의해 약혼자를 잃은 재키, 시간 여행을 계획한 대로까지. 또한 스팀펑크(SF, 더 좁게는 대체 역사물의 하위 장르 중 하나. 20세기 산업 발전의 바탕이 되는 기술(예: 내연기관, 전기 동력) 대신, 증기기관과 같은 과거 기술이 크게 발달한 가상의 과거, 또는 그런 과거에서 발전한 가상의 현재나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라는 장르에 어울리게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환상인지 모를정도로, 눈이 뱅뱅돌고, 눈 앞에서 불꽃이 튀는 듯한 사건들에 정신이 없다. 그럼에도 중심축을 벗어나지 않고 이야기를 일관되게 이끌어나가는 작가의 힘이 대단하다. 

작품은 단순히 선과 악의 대립, 주인공의 승리라는 오락적 기능만을 내보이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원치 않은 상황에 놓여졌을 때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 것인가, 과거의 한 시점으로 돌아가게 됐을 때 나의 행동이 역사를 바꿀 수 있다면 과연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 그 때 한 행동은 과연 나의 의지로 행해진 것인가 아니면 이미 결정된 것인가등 시간 여행이라는 주제에서 제기될 수 밖에 없는 문제에도 눈을 돌린다.  아마도 겪어보지 않은 이상 영원히 해결될 수 없는 숙제겠지만, '역사 속에 던져진 개인의 존재 이유'라는 측면에서 또 다른 생각을 하게 한다. 

주인공 도일은 유쾌하다. 연고도 없는 곳에 훌렁 남게 된다면, 나라면 허둥지둥 정신이 없었을텐데, 도일은 온갖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느긋하다. 정신없이 일어나는 사건들 속에서 그런 도일의 느긋한 성격이 오히려 돋보였던 것 같다. 또한 주어진 시간 속에서 때로는 싸우면서, 때로는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에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모습을 본다. 책 앞장에 나온 <누구도 같은 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는 없다. 두 번째 발을 담글 때 강은 같은 강이 아니고, 그도 같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라는 말에 어쩌면 겪어보지 못한 과거를 아쉬워하지 말고, 지금 현재를 충실하게 살라는 의미가 담긴 것은 아닐까.  만약 미래에서 지금의 현재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고 해도, 그 현재는 이미 온전히 나의 것인 지금의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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