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바라보는 깊이있는 시각을 느낄 수 있는 미술서!!]
<미술관에 간> 시리즈는 제가 미술 관련 도서 중 가장 애정하는 시리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출간된 책들 전부 읽었어요. 물론 화학이나 수학, 물리학, 의학에 통달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 내용을 전부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렇게 다양한 시각에서 미술 작품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 신기해서 밑줄 좍좍 그어가며 읽었답니다. 이번에 출간된 책은 [미술관에 간 법학자] 예요. 진실을 밝히는 미술과 법에 얽힌 불꽃논쟁들. 과연 법의 관점에서 어떻게 미술 작품들을 바라보았을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포문을 연 작품은 카유보트의 <마루를 깎는 사람들>입니다. 세 명의 건장한 일꾼들이 웃통을 벗고 마루를 깎는 그림이에요. 카유보트가 인상파 화가였던 덕분에 빛과 원근법이 효과적으로 사용되어 있어 창문에 비치는 빛으로 마루가 반짝이고 인부들의 근육이 생동감 있게 그려져 있습니다. 카유보트는 1875년 이 작품을 살롱전에 출품했지만 낙선하게 되는데요, 그 이유가 '고된 노동이라는 저급하고 천박한 주제'를 다루었기 때문이라고 하니 지금 저의 시각에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낙선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 본질에 계급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저자는 도미에의 <삼등칸>과 <일등칸>을 예로 들며 더 쉽게 설명을 이어가요. 그 뒤에 이어지는 작품들을 보니 생각보다 계급과 노동을 다룬 작품들이 많더라고요!
혹시 콜리에의 <고디바 부인>이라는 그림을 아시나요? 벌거벗은 부인이 말 위에 올라앉아 마을을 도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요. 이 작품은 11세기 초 영국 중서부의 코번트리 지역을 통치하던 봉건 영주 레오프릭 백작의 높은 세금 부과에 반대한 고디바 부인의 모습을 그린 작품입니다. 그녀는 영주의 젊은 아내로 남편 때문에 고통받는 소작농들의 처지를 안타까워했죠. 남편에게 세금을 낮춰 줄 것을 간청하지만 영주는 '당신이 정오에 알몸으로 말을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돌면 모를까...' 라며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습니다. 이에 고디바 부인이 남편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감동받은 마을 사람들은 그녀가 벌거벗고 마을을 돌 동안 집의 창문을 모두 닫아놓기로 약속해요. 저는 이 그림을 '관음'의 측면에서 바라본 해설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관음증을 일컫는 '훔쳐보는 톰'이라는 표현이 여기서 나왔죠. 그런데 '조세저항'이라는 시각에서 살펴보니 고디바 부인의 행동이 무척 숭고해 보입니다. 여기에서 관습과 상식을 깨는 정치적 행동을 뜻하는 '고다이바이즘'이라는 용어가 탄생했다고 합니다.
책에서는 사회의 여러 현상과 사건을 그림과 함께 자세히 설명합니다. 전쟁법과 양심적 병역거부, 장애와 차별에 관한 오해와 편견들, 거장들이 그린 성폭력과 보복의 미술사, 뇌물의 역사, 대리모와 익명출산에 대한 논쟁 등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운 일들이 다채로운 그림과 함께 펼쳐집니다. 앞서 읽은 다른 <미술관에 간> 시리즈 때도 느꼈지만 이번 법학자 편을 읽으니 주변과 사회를 보는 시각이 한층 깊어지는 듯한 느낌이에요. 단순히 아름다움과 독특함의 관점이 아닌 인간의 삶 그대로를 들여다볼 수 있었던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 네이버 독서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어바웃어북>으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