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트
오승호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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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야 한다] 


온종일 전화기가 울려대는 하청 콜센터업체 애니웨어콜로 한 통의 의문스러운 클레임 전화가 걸려옵니다. 단순한 장난이라고 생각하며 응대에 나선 관리 직원은 전화를 건 상대가 말한 내용에 충격을 받죠. 애니웨어콜에서 일하던 직원 무라세 아즈사를 데리고 있으며, 이것은 영리 목적의 납치라는 것. 그렇지 않아도 좋은 평가를 받던 직원 아즈사가 며칠째 결근을 해 모두 미심쩍게 생각하던 중이었습니다. 자신을 퓨와이트라 밝힌 범인은 몸값으로 1억엔을 요구하면서, 돈을 나누어 가진 경찰 백명이 각각 지정된 장소로 이동할 것을 요구합니다.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요구지만 어쨌든 속수무책으로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 희대의 납치극 앞에서 각각의 사연이 밝혀지며 이야기는 충격 속으로 독자들을 몰아넣습니다. 

 

데뷔작 [도덕의 시간]을 시작으로 매번 발표하는 작품마다 묵직한 울림을 주는 작가 오승호(고 가쓰히로)가 데뷔 작품 발표 후 4개월만에 집필한 작품이 바로 [로스트]입니다. 압도적인 분량의 납치 미스터리극이라니, 아무리 오승호 작가라고 해도 한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하지만 역시 기대했던 대로 여타의 작품들과는 차원이 다른 세계를 보여주었습니다. 어째서 무라세 아즈사인가, 아즈사가 몸담고 있던 연예기획사 사장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까지 하면서 그녀를 구해내려고 하는가, 왜 퓨와이트는 번거로움을 자처하면서까지 그런 운반 방법을 사용했는가 등, 끊임없이 떠오르는 의문 앞에서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한 가지입니다. 

아무리 초라하고 비겁하고 꼴사나워도, 설령 그게 더 편하다고 해도 나는 죽어서는 안 된다......포기할 수 없다. 기꺼이 죽음을 맞이할 수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죽어서는 안 된다. 세상에서 오직 나만큼은 그것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p 558

죄는 무엇인가, 속죄는 무엇인가. 과거의 범죄와 비극을 껴안고 사람은 과연 살아낼 수 있는가. 이는 오승호 작가가 데뷔 때부터 끊임없이 묻고 있는 질문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거에 한 사람을 계략에 빠트려 죽음으로 내몰고 그의 가족들까지 고통 속에 살게 만들었던 연예기획사 사장 아즈미 마사히코. 그는 속죄하기 위해 누군가를 진심으로 도우려 하고, 자신이 죽게 만들었던 사람의 측근이 가하는 고통까지 받아들이려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퓨와이트가 나타난 이후 미처 실감하지 못했던 피해자들의 거대한 절망과 고통을 마주하고 편하게 죽음을 맞이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해요. 그럼에도 그가 선택한 것은 결국 삶입니다. 자신은 결코 편하게 죽어서는 안 된다는 다짐. 자신의 목숨을 거두는 것이 ‘그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결의. 어떻게든 이 죄의식과 괴로움, 비극을 짊어지고 삶을 마주해야 한다고요. 

뛰어넘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고, 떠안고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말도 안 된다. 포기 따위 말도 안 된다. 고작 이 정도의 비극. 이런 저열한 이유로 춤추지 못하게 되는 건 전적으로 사양이다. 

<스완> p511

이런 그의 모습은 오승호 작가의 작품 중 제가 가장 애정하는 [스완]의 이즈미와 닿아 있습니다. 자신의 삶에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비극. 이 비극따위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작 이런 비극 때문에 춤추지 못하게 되는 것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보여주는 이즈미와 자신이 선택한 ‘편한’ 죽음 때문에 누군가를 허무와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트리지 않겠다는 아즈미. 그 모든 고통과 괴로움을 등에 지고라도 삶에 진지하게 임하겠다는 결의를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속죄와 벌. 쉽지 않은 소재입니다. 영원히 풀리지 않을 미스터리일 겁니다. 그 어려운 숙제를 정면으로 받아들이며 매번 놀라운 이야기를 풀어내는 오승호 작가. 아마 그에게 매료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이번에는 ‘숙제’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지켜보고 싶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출판사 <블루홀식스>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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