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몰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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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부터 벗어나 구원과 치유를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

무명의 각본가인 가이 치히로는 어느 날 스타 감독 하세베 가오리로부터 차기작의 각본과 관련된 메일을 받습니다. 감독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15년 전에 일어난 사사즈카초 일가족 살해 사건. 은둔이 외톨이였던 장남이 여동생을 죽이고 불을 질러 잠들어 있던 부모까지 목숨을 잃은 사건이었어요. 사사즈카초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자라왔던 가이 치히로는 감독이 자신에게 각본을 의뢰한 데는 숨겨진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직감합니다. 작품을 위해 취재를 시작한 두 사람. 각자가 기억하는 과거과 두 사람의 만남으로 연결되며 숨겨져 있던 진실이 드러납니다.

살해당한 여동생은 다테이시 사라로 어린 시절 하세베 가오리와 접점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는 인물입니다. 학습지에 오답이 많으면 베란다로 쫓겨났던 어린 시절의 가오리는 그 때 함께 베란다에 나와 있던 옆집 아이가 사라라고 기억해요.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한 자락 따스함을 주었던 사라. 하지만 그녀가 사실은 허언증, 혹은 자신보다 우월한 사람을 끌어내려 절망을 맛보게 하는 천재 파괴자의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워하죠. 그러나 주변 증언들을 통해 어쩌면 베란다에 나와 있던 사람이 사라가 아닐 지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사라의 오빠가 사라를 잔혹하게 살해한 이유에 대한 의문 등이 소설을 이끌어나갑니다.

중간중간 치히로가 언니에게 보내는 듯한 메시지가 등장하는데요, 표면적으로 유명 피아니스트인 언니는 전세계를 돌며 활동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읽다보면 위화감이 느껴지고 치히로 또한 가슴 아픈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돼요. 이 소설은 15년 전 일어난 살인사건의 진상을 파악해나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보통 미나토 가나에의 작품에서 느껴지던 미스터리함보다는 과거의 상처를 극복해나가려는 치히로에게 초점을 맞추어서 애잔함을 강조한다고 보여집니다. 띠지에 적힌 작가 인터뷰에도 '일몰이라는 말이 제게는 재생의 상징'이라고 적혀 있어서 어쩌면 제가 추측한 것이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백]으로 독자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던 미나토 가나에. 개인적으로 그 이후 [고백]만큼 강렬했던 작품은 없었다고 생각되지만, 작가의 작품 스펙트럼이 점점 넒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점에서 [일몰]은 꽤 괜찮은 소설이었어요. 과거의 미나토 가나에가 아니라 현재의 미나토 가나에를 알아가고 있다는 기분이 듭니다.


** 네이버 독서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재인>으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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