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무엇이고 우리는 각자 어떤 굴레에 갇혀 살아가는가]
처음 이 책을 받아들었을 때 생각보다 가벼운 무게와 적은 분량에 마음 한 켠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절대 방심하지 말아야지 다짐했었다. 그 동안 여러 편의 세계문학을 접하면서 작품의 분량이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떤 이야기는 두꺼워도 술술 읽히는 반면, 어떤 이야기는 얇아도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쏟아부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처음의 다짐은 어떤 예감 같은 것이었을까. 해설을 제외하고 작품 자체로만 161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세계문학의 높은 벽을 실감한 것 같다. 페이지를 넘기는 손이 더뎌지고 의미를 생각하느라 방향은 뒤가 아닌 자꾸만 앞을 향한다.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시즌 7의 테마는 <날씨와 생활>이다. 그 중 한 편인 그라실리아누 하무스의 [메마른 삶]은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삶의 모든 것을 잃은 뒤 '덜 메마른 곳'을 찾아다니는 파비아누 가족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아들마저 죽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는 고통스러운 피난길, 그들 머리 위로 느껴지는 땡볕과 갈증이 현실적으로 다가와 시작부터 목이 바싹 타는 느낌이었다. 마침내 버려진 농장에 도착해 일상을 꾸려가는 듯 하지만 비가 내리자 다시 돌아온 주인의 가축을 돌보게 되고, 곡식은 점점 바닥을 드러내 결국 파비아누는 자신의 몫으로 받았던 가축을 헐값에 다시 주인에게 넘기게 된다. 그 과정에서 그는 결국 이해할 수 없는 이자에서 비롯된 차이로 인해 줄어드는 품삯, 선술집에서 만난 노란 제복의 군인과의 마찰에서 빚어진 감옥살이라는 경험을 하고, 가뭄은 다시 찾아와 또다시 어딘가로 떠나야 하는 운명에 처해지는 것이다.
희망이라고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인 듯 한데, 그럼에도 파비아누는 더 나은 미래를 꿈꾼다. 자신과 아내 비토리아와는 달리 자신의 아들들이 살아갈 '더 나은 미래'를 그리고, 이보다 더한 일도 겪었다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작게는, 비토리아 어멈이 '제대로 된 침대'를 원하는 장면에서조차 그들이 삶에 대해 희망을 품었음이 느껴지는 듯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또 다시 길을 떠나야 하는 상황. 가난이 대물림되고 방황이 이어지는 그들의 인생은 마치 어떻게 해도 되돌릴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 같다.
<날씨와 생활>을 테마로 한 흄세 시즌 7 중에서도 특히 이 작품에 눈길이 갔던 이유는 반려견 '발레이아'가 가족들을 바라보는 장면이 궁금해서였다. 파비아누 가족이 처한 상황만큼이나 건조하고 메마른 문체 사이에서 오직 발레이아가 등장할 때만이 삶의 향기가 느껴지는 듯 하다. 파비아누 가족의 삶이 진정 삶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저 어쩔 수 없이 이어가는 명줄, 발레이아가 죽는 장면은 희망 없는 그들의 미래를 상징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짧은 이야기지만 결코 적은 시간에 끝낼 수 없는 이야기다. 어쩐지 숙연해지는 마음, 삶이라는 거대한 무엇 앞에서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듯한 기분. 과연 삶이란 무엇이고 우리는 각자 어떤 굴레에 갇혀 살아가는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