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뢰딩거의 소녀
마쓰자키 유리 지음, 장재희 옮김 / 빈페이지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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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상상력 속에 숨은 날카로운 가시같은 비판]

아무리 문외한인 저라도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봤습니다! 상자에 고양이를 넣고 밀폐합니다. 그 상자 안에는 가스가 든 병과 방사성 물질, 가이거 계수기와 망치가 들어있는데 이것은 가이거 계수기가 방사성 물질의 붕괴를 검출하면 망치가 내려와서 병을 깨뜨리는 장치입니다. 이때 사용할 동위원소가 한 시간당 붕괴될 확률은 50퍼센트예요. 관찰자가 확인하기 전까지 고양이는 살아있는 상태도 아니고 죽어있는 상태도 아니라는 양자 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을 반박하기 위해 슈뢰딩거가 진행한 사고 실험이라고 하는데, 여기까지!! 그 이상은 제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해요. 그런 ‘슈뢰딩거’가 제목에 쓰여있는 것을 보고, ‘아 이것은 어려운 작품이겠구나’ 짐작했습니다.

 

하지만 웬걸요! 물론 책에 등장한 이론을 전부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저는 이론이 아니라 이야기에 집중했어요. <예순다섯 데스>에서 무라사키가 65리스트를 만들길래 그저 단순히 버킷 리스트를 만드나보다 했습니다. 그런데 단순한 소원 리스트가 아니었어요. 작품의 배경에서 백년 전도 전쯤, 인간들로 넘쳐나는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국의 대표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인간의 수를 줄이기 위해서는 태어나는 인간의 수를 줄이거나, 죽는 인간의 수를 늘려야 했는데 그들의 선택은 후자 쪽이었습니다. 그 결과 과학자들이 병원체를 만들어 전 세계에 뿌렸고,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인류는 예순다섯 살까지밖에 살지 못합니다.

 

무라사키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반점으로 인해 특별히 인상적인 외모의 소유자입니다. 그런 그녀의 리스트에 적힌 것은 돈 잘 버는 전문직에 종사하기, 많이 벌면 은퇴해서 우아하게 살기, 번 돈은 예순다섯 살까지 남김없이 쓰기. 그런 그녀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자신과 똑같이 얼굴에 반점이 있는 소녀를 만납니다. 그 어떤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아버지라 불리는 남자 밑에서 노동력 착취를 당하고 있던 소녀는, 무라사키로부터 사쿠라라는 이름을 받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해요. 바이러스에 감염된 인류는 어쩌면 비극. 하지만 이 비극 속에서도 다음 세대를 위한 사랑과 가르침은 피어나고, 후세는 그 유산을 이어받아 뚜벅뚜벅 발걸음을 옮깁니다. 다른 많은 작품 속에서 특히 이 작품이 제 마음을 후벼판 이유는 어쩌면 제가 부모, 혹은 다음 세대의 걱정을 많이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세계 수학>은 읽으면서 머리가 조금 아프기는 했지만 우리 삶을 지탱해주고 있는 수학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이색적인 작품이었어요. 그 외에도 <꽁치는 쓴가, 짠가>, <살 좀 찌면 안되나요>, <슈뢰딩거의 소녀>, <펜로즈의 처녀> 모두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던 독특한 작품이었습니다. <예순다섯 데스>에서 느꼈던 연대감 때문인지 저는 <살 좀 찌면 안되나요> 도 인상적으로 읽었어요.

 

읽으면서 내내 ‘와, 이 작가 대체 뭐지??!!’ 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기발한 상상력, 사회 관습에 과감히 도전하는 작품들에 앞으로 주목할만한 작가를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엉뚱하면서도 독특한 상상력 안에 숨어 있는 날카로운 가시 같은 비판. 여러분도 꼭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출판사 <빈페이지>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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