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궁
허주은 지음, 유혜인 옮김 / 시공사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제 완전히 믿고 읽는 허주은표 역사 로맨스릴러!!]

 

1426년 조선, 제주를 배경으로 열 세 명의 소녀가 사라진 사건을 수사하는 민환이의 이야기를 다루었던 [사라진 소녀들의 숲] 의 작가 허주은이 돌아왔습니다. 이번 작품은 조선 영조 치하를 배경으로 벌어진 살인사건을 다루는데요,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서러움과 분노로 광기에 사로잡힌 사도세자 이야기, 정치적인 음모, 주인공 백현과 종사관인 서의진의 로맨스 등 깊이있고 풍부한 이야기를 선사합니다. 살인사건으로 인한 조마조마함, 로맨스를 통한 가슴 두근거림 등 다양한 템포로 뛰는 심장의 박동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1758년, 혜민서에서 네 명의 여인이 잔인하게 살해당합니다. 혜민서에서 일하다가 내의녀가 된 백현은 은인이자 스승인 정수 의녀가 범인으로 몰리자 진범을 알아내기 위해 은밀히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해요. 새로 부임한 종사관과 우연히 만난 이후 함께 사건 해결에 뛰어든 두 사람은 신분의 벽을 뛰어넘어 서로에게 애정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한편 사건이 세자와 연관이 있음을 알게 된 백현. 궁궐을 감싸고 있는 투명한 막이 걷히면 얼마나 많은 피가 강이 되어 흐를까 두려워하며 목숨을 걸고 진실을 밝히기로 결심합니다.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는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영조는 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맡겨놓고 늘 그의 뒤에 앉아 세자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봤다고 하죠. 세자가 명을 내리면 왜 네 마음대로 하느냐 혼내고, 자신에게 조언을 구하면 그런 것도 혼자 결정하지 못해 어떻게 왕이 되겠느냐 꾸중했다던 영조. 아비의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 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세자의 마음이 어땠을지, 저는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아파요. 영조에게 세자는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요. 왕조의 맥을 이어나가기 위한 도구였을까요? 그에게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는 했을지, 진심으로 궁금합니다.

 

그래서 저는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복잡해졌어요. 여인들이 살해당한 사건의 발단은 세자입니다. 분명 그럴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부디 아니기를 바랐어요. 우리는 세자가 어떤 운명을 맞이하는지 알잖아요. 세자를 응원하는 마음 반, 그럼에도 현이 진실을 밝혀 정수 의녀를 구하고 의진과 행복해지기를 기원하는 마음 반이 얽히면서 모두가 안타까웠어요. 심지어 사건의 범인까지도 짠해서 애가 탔습니다. 누구나 소중한 존재를 잃게 된다면 그런 괴물이 되지 않을까, 안타까웠어요. 작가님만의 매력적인 작품 분위기와 뛰어난 스토리텔링 능력은 이번 작품에서도 여전히 빛을 발해, 제가 작품 한 가운데에 서 있는 것만같은 느낌을 전달합니다.

 

세자와 얽힌 사건을 조사해나가면서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한 자신과 세자를 동일시하던 현은, 결국 자신을 둘러싼 벽을 스스로 깨트리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자신의 존재 이유에 아버지의 인정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 사실은 생각보다 어머니가 자신을 무척 사랑하고 있다는 것, 세상에 두려워할 일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성장하는 현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기특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아려오는 듯 해요.

 

[사라진 소녀들의 숲]에 이어 [붉은 궁]도 정말 만족스럽게 읽었어요. 이제 '허주은' 작가님의 이름만 보여도 아무 망설임없이 선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23 에드거 앨런 포 어워드 수상작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수작이에요. 다음 작품은 과연 어떤 시대를 배경으로 할 지 벌써부터 너무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 출판사 <시공사>로부터 지원받은 가제본 도서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