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나는 7일의 미술 수업
김영숙 지음 / 빅피시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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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풍요롭게 해 줄 7일간의 미술 여행]

 

8월 중순에 복직하고 정말 정신없이 살아온 것 같아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니 유치원에 다닐 때와는 달라서 직장에 있어도 아이 신경쓰랴, 일하랴, 퇴근하면 또 집안일에 아이들 챙기느라 숨 한 번 제대로 돌릴 틈이 없었습니다. 아이 키우는 집은 다 그렇겠지만 주말은 또 완전한 주말이 아니잖아요. 온전한 내 시간을 한 시간이라도 갖는 것이 왜 이리 어려운 일인지, 명절을 앞두고 되돌아보니 정말 번쩍하고 타임슬립이라도 한 듯한 기분입니다.

 

순간순간 공허함을 느꼈던 것 같아요. '같다'는 표현을 쓴 이유는 그런 감정을 느낀 순간조차 어느새 금방 사라지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당장 해결하고 정리해야 할 일들이 사라지지도 않고 쌓여있었거든요. 하지만 그 잔상은 마음 속 깊은 곳에 남아서 제 정신이 이리저리 헤매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다 발견한 어떤 구절.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이 예술이라는 의미의 문장이었어요. 그래서였을까요. 일하고 육아하면서도 짬짬이 읽었던 소설들이 재미는 주었지만 마음을 채워주지는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저 문장을 마주한 순간 다시 예술 관련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짝 번아웃 상태의 저를 구해준 단비같은 책은 바로 [처음 만나는 7일의 미술 수업] 입니다. '예술의 중심, 이탈리아에서 시작하는 교양 미술'이라는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일주일간의 이탈리아 미술 그랜드 투어'로 꾸며져 있습니다. 바티칸, 로마, 피렌체, 밀라노,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이탈리아를 방문한 사람이라면 꼭 보고 알아두면 좋을 조각과 그림들이에요. 저는 그림 관련 책이라면 물론 대부분 선호하지만 이렇게 권장량이 정해져 있으면 더 열심히 읽게 되더라고요. 숙제인 듯 해 강박을 느끼면서도 더 꼼꼼하게 읽게 된다고 할까요.

 

표지에서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그림은 프란체스코 하예즈의 <입맞춤>이라는 작품입니다. 19세기 중반의 이탈리아, 여전히 여러 도시국가로 나뉘어져 있던 격동의 시대에 하예즈는 밀라노의 알폰소 마리아 비스콘티 디 살리체토 백작으로부터 프랑스와 사르데냐(북서부의 사보이 왕국이 이름을 바꿈) 왕국 사이의 동맹이 가져올 '희망'을 그림에 담아달라는 의뢰를 받아요.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을 앞두고 연인을 찾아와 입맞춤으로 작별 인사를 하는 남자의 옷은 빨강, 여자의 옷은 하양과 파랑으로 그 색이 프랑스 국기를 연상시킨다고 하네요.

 


 

저는 처음에 이 그림에 흥미가 생겨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비슷한 울림을 주는 지롤라모 인두노의 <위대한 희생>이라는 그림에 더 마음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가리발디 장군 휘하에서 통일 전쟁을 치르기 위해 길을 떠나는 아들과 그런 아들에게 작별의 입맞춤을 하는 어머니의 모습이라니!! 제가 미혼이었다면 하예즈의 그림에 더 매료됐겠지만, 저 역시 어머니인 것을요.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몇 번씩이나 '엄마 안녕! 잘 갔다와! 사랑해!'를 외치는 아이들이 떠올라 그림 속 어머니에게 깊이 감정이입하고 말았습니다. 누구라도 이 그림을 보면 가슴이 뭉클해지지 않을까요.

 


 

그림 관련 책을 많이 보신 독자라면 친숙하게 여겨질 그림 외에 제가 하나 더 소개하고 싶은 그림이 있습니다. 바로 귀도 레니의 <싸움박질하는 아기 천사들>이라는 작품인데요, 귀도 레니는 <베아트리체 첸치>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그 화가입니다. <싸움박질하는 아기 천사들> 그림을 보는 순간 그 토실함에 미소가 지어지지만 천사들의 표정을 보면 곧바로 그림에 어떤 메시지가 숨겨져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통통하고 작은 아기 천사들이 생각보다 격렬하게 싸움을 하고 있는데 자세히 보면 갈색 피부의 아기들이 일방적으로 이기고 있는 것을 발견하실 거에요. 흰 피부를 귀족, 갈색을 평민으로 보면 계층 갈등으로 볼 수도 있고, 흰 피부는 신성함, 갈색 피부늬 아가들은 세속적인 세계로 읽어 영과 속의 투쟁으로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현실과 신화, 종교와 세속 등 다양한 소재의 그림들을 풍성하게 만나실 수 있어요. 저는 아이들이 좀 자라면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중심으로 함께 예술 여행을 떠나려고 몰래(?) 계획하고 있는데요, 이렇게 한 나라의 작품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책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삶에 치여 심신이 지친, 저같은 독자가 있다면 짬이 날 때 예술 책 한 권 어떠실까요. 우리 함께 이탈리아로 미술 여행을 떠나보아요.

 

**출판사 <빅피시>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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