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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영혼 1 ㅣ 뫼비우스 서재
막심 샤탕 지음, 이세진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현실이야말로 가장 무시무시한 것이 아닐까-
경기도 일대에서 잔인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곧잘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에 비유해서 말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우리나라에서 그 사건은 아직도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미 공소시효를 지나 범인이 잡히더라도 법적으로 형벌을 내릴 수는 없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범인이 잡히기를 기다린다. 우리나라에 화성연쇄살인사건이 있다면, 미국에는 '조디악'이라는 유명한 킬러가 있다. '현대판 살인의 추억'이라는 선전문구를 인용하여 홍보하는 이 영화와 더불어, 또 하나의 '현대판 살인의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난 책이 있다. 바로 왠지 달콤할 것은 이름을 가진, 막심샤탕의 <악의 영혼>이다.
고문당하고 신체의 일부가 심하게 훼손되어 죽음을 당한 여성들의 시신이 하나씩 발견된다. 이 사건을 맡은 젊고 유능한 수사관이며 범죄 프로파일러인 조슈아 브롤린은 단서를 잡아, 살인마에게 붙잡힌 죽음 직전의 여성 줄리에트 라파예트를 구해내고, 살인마는 브롤린의 총에 맞아 숨진다. 그로부터 1년 후..깊은 산 속 폐가에서 1년 전 사건을 재현하는 듯한 여성의 시체가 발견되고, 머리에 있는 범죄사인 또한 동일하다는 것이 밝혀진다.시간이 지나 다른 피해 여성이 나오고, 브롤린과 다른 형사들은 범인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신출귀몰한 범인은 그 정체를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 과연 범인은 누구인가. 1년 전 죽었다고 생각한 범인이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온 것이 아닌가 혼란스러운 가운데, 서서히 범인의 정체와 그의 목표가 밝혀진다.
내가 프로파일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미국드라마 '크리미널 마인드'를 보게 되면서부터였다. 크리미널 마인드 속의 수사관들은 단서를 가지고 범인이 어떤 인물인지, 어떠한 성장과정을 거쳤고,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를 분석하고 파일을 만든다. 드라마는 내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인간의 악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내가 드라마에서 눈을 떼지 못했던 것과 프로파일러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낀 것은, 어쩌면 사람은 모두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고 싶어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주인공 브롤린 또한 자신이 받은 교육을 토대로 범인의 파일을 만들어간다. 작품 속에서 다른 부분의 묘사도 훌륭하지만, 내가 특히 감탄한 부분은 검시라든가, 법의학 용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있는 점이었다. 작가들이 모르는 분야에 대해 취재를 나간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름만 달콤한 이 작가는 <악의 영혼>을 쓰기 위해 대학에서 범죄학과 범죄심리학 강의를 수강했고, 담당교수 덕택에 부검에도 수차례 입회했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해부하는 장면의 묘사는 너무 적나라해서 거의 읽지 못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작가의 책을 쓰기 위한 헌신적인 노력에는 감동했다고 해야 할까.
결말은 상상했던 것과 너무 달라서 마음이 아팠고, 한동안 머리속에서 지워버릴 수가 없었다. 범인이 내세우는 살인의 목적은 너무 어처구니 없었고, 짜증이 날만큼 바보스러웠다. 그리고 동시에 씁쓸함을 느꼈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해칠 수가 있을까. 동물도 필요하지 않으면 다른 생물을 해치지 않는다고 들었다. 오직 인간만이 자신의 쾌락과 목적을 위해 인간마저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오싹 소름이 돋는다. 인간의 잔인함은 과연 어디가 종착역인 것일까.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바친 2년동안 도저히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사건을 많이 만났다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공포감보다 작가의 그 한 마디가 더욱 크게 다가왔다.
책은 더운 여름의 아찔함을 잊어버리게 해 줄만큼 자극적이고, 재미있었다. 맛있는 이름을 가진 작가의 브롤린 시리즈가 또 출간된다고 하니, 잔인한 묘사에 놀랐으면서도 내심 기대가 된다. 다만, 노약자와 임산부, 그리고 어린이들은 이 책을 금할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