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주의보 이판사판
리사 주얼 지음, 김원희 옮김 / 북스피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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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에 함부로 누군가를 들이면 벌어지는 일]

 

북스피어 출판사의 가장 기대하는 시리즈 <이판사판>의 다섯 번째 작품은 리사 주얼의 [가족 주의보]입니다. 지금까지 출간된 라인업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판사판> 시리즈의 네 작품은 모두 일본 소설이었어요. 아마도 이 시리즈는 일본작품으로 채워지려나보다-라는 제 예상과는 달리, 다섯 번째로 선정된 리사 주얼의 작품을 앞에 두고 든 생각은 '얼마나 재미있으면 최초로 이판사판 시리즈에 합류했을까'라는 것이었습니다. 영미소설을 아예 출간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북스피어 출판사에 대해 제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 자체가 미미 여사를 비롯한 워낙 일본 장르소설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기 때문에 놀라움과 기대가 컸던 것 같아요.

 

입양가정에서 자란 리비는 25번째 생일에 변호사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습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친부모가 자신에게 대저택을 유산으로 남겼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는데, 그 가치가 무려 6백만에서 7백만 파운드 정도! 기쁨과 얼떨떨함도 잠시, 리비는 이 저택에서 세 사람이 동반자살했다는 신문기사를 발견해요. 시체로 발견된 것은 두 명의 주인 부부와 신원불명의 남자, 그리고 그 옆에서 발견된 보살핌을 잘 받은 것으로 보이는 아기. 이 아기가 바로 리비였던 겁니다. 유산도 유산이지만 저택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건지, 자신의 언니와 오빠였던 아이들은 어떻게 된 건지 알아내야겠다고 결심한 리비 앞에 그 동안 묻혀있던 비밀이 드러납니다.

 

'집 안에 누군가를 들일 때는 조심할 것!'이라는 문구가 말해주듯이, 리비의 가족, 즉 램 가문에 누군가들이 찾아옵니다. 처음에는 손님으로 들어섰던 그들은 시간이 지나도 결코 떠나지 않고 오히려 주인인 헨리와 마티나의 자리를 꿰차고 앉아 주도권을 쥐기 시작하죠. 마치 안개가 퍼지듯, 음습한 기운으로 저택을 차지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출현을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던 헨리와 마티나의 아들인 어린 헨리.

 

[가족 주의보]는 현재의 리비의 시각, 과거의 어린 헨리의 시각, 그리고 현재 또 다른 여성의 시각으로 진행되는데요, 어린 헨리의 시각으로 진행되는 사건들을 지켜보자니 제 숨이 턱턱 막혀오는 것 같았어요. 아니 대체, 왜 낯선 사람들을 집안으로 들이는 거죠? 겁도 없이? 저는 집에 친정 가족들이 온다고 해도 부담스럽게 느끼는 사람인지라, 생판 남인 사람들과 같이 산다는 상상만 해도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가는 것 같아요. 게다가 그들이 정상적인 것도 아니에요. 뒤틀리고 어두운 내면으로 집 안을 비정상적인 세계로 만들어버리는 사람들. 으아, 정말 싫습니다!

 

어린 헨리의 눈으로 봐도 지금 상황이 옳지 못하다는 것을 알 정도인데 대체 무엇이 램 부부의 눈을 멀게 만들었던 걸까요. 아내의 뜻대로 모든 것을 이루어주고 싶었던 쇠약해진 남편? 이전 삶에서는 의미를 찾지 못하다가 이제야 광명을 찾은 것처럼 느낀 아내? 저는 특히 어린 헨리의 엄마인 마티나의 태도가 정말 불편했습니다. 아버지 헨리야 병을 얻은 탓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마티나의 모습은 아이들을 양육하고 보호하기를 포기한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집에 들인 사람들이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해주었다고 해도 아이들에게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지 동의를 구하기는 커녕 제대로 된 교육과 보살핌을 받지 못하게 만들었으니까요. 개인적으로 굉장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가족 주의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예전에 읽었던 [엿보는 마을] 속 사람들보다 훨씬 개성이 뚜렷하고 입체적입니다. 세 사람의 시각으로 진행되기 때문인지 장면 전환도 빠르고 개인적으로 반전의 제왕이라 이름 붙인 '할런 코벤'처럼 여기저기 소소한 반전이 등장해서 읽는 재미가 있어요. 자칫 지루하게 전개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세 가지 요소가 작품을 빛나게 해줍니다. 여기에 리사 주얼의 어린 시절-가족을 강압적으로 통제하려했던 권위적인 아버지-을 알고 나니 작품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고 할까요. 스릴러지만 읽고 난 뒤에는 범인이 밝혀졌다는 통쾌함보다 아스라한 아픔이 더 마음을 후벼파는 작품이에요. 어른이 제대로 된 역할을 못했을 때 고통받는 것은 결국 아이들이라는 사실이 뼈저리게 다가옵니다.

 

'이판사판 시리즈는 다 재미있어!'라는 생각으로 읽기 시작해서인지 저는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사실 처음에는 '네가 과연 이 시리즈에 낄 수 있겠어?'라고 평가하는 마음이었는데, 지금은 무릎을 꿇겠습니다. 이판사판 시리즈의 다섯 번째 작품으로 어서 오십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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