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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귀 살인사건
안티 투오마이넨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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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에서 찾아온 코미디-스릴러]
수학에 살고 수학에 죽는, 수학을 위한 수학에 의한 수학의 헨리는 보험회사에서 일합니다. 그가 믿는 것은 오직 숫자와 숫자들로 이루어진 정확한 계산이에요. 하지만 하루아침에 직장에서는 해고 통보를 받고 형이 죽었다는 갑작스러운 부고까지 더해져요. 형이 운영하던 놀이공원을 상속받게 되었다는 것에 놀랄 겨를도 없이, 이 놀이공원, 아니 탐험공원이 엄청나고 수상한 금액의 빚을 떠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야말로 첩첩산중,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말이 저절로 떠오르는 상황이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에요. 형의 부채를 대신 갚으라고 찾아오는 괴한들과 한밤중 갑자기 칼을 들고 추격해오는 침입자, 각양각색의 개성을 자랑하는 공원 직원들과 난생 처음 핑크빛 감정을 느끼게 하는 라우라로 인해 헨리는 정신을 차릴 틈이 없습니다.
오랜만에 읽는 북유럽 소설입니다. 북유럽 스릴러 외에 프레드릭 베크만의 작품들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저로서는 그만큼 재미있는 작품들이 또 출간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때문에 ''오베라는 남자'를 재미있게 읽었다면 이 작품 또한 재미있을 것이다'는 취지의 홍보문구에 그만 쏙 빠져버리고 말았답니다. 사실 이 [토끼 귀 살인사건]은 처음부터 푹 빠져들만한 이야기는 아니었어요. 어쩌면 AI처럼도 느껴지는 헨리에게 인간적으로 애정이 느껴지지 않아서였을까요. 하지만 한 1/3지점을 지나면 흑백으로 보였던 헨리와 그의 세계가 점차 색채를 띠기 시작하는 느낌에 작품이 점점 살아나는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스릴러의 형식을 띠고 있는 작품이에요. 그도 그럴 것이 작품 제목에도 떡하니 드러내고 있잖아요. 토끼 귀 '살인사건'이라고. 저는 처음에 제목을 이해하지 못했었어요. 토끼 귀를 살인한다는 건지, 그렇다면 그 토끼 귀는 진짜 토끼의 귀인 건지, 그것도 아니면 '토끼 귀'라는 별명을 가진 누군가인지 알쏭달쏭 했습니다. 결국 이 수수께끼는 작품 초반에 밝혀집니다. '아~이래서 토끼 귀 살인사건'이구나 라고 알아채실 수 있을 거예요. 스릴러이긴 스릴러인데 왜 하나도 무섭지가 않죠??!! 무섭다기보다 헨리를 위협하러 온 사람들이 정말 위협하러 온 게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어설픈데, 또 이 어설픔이 재미있어서 큭큭 웃게 되더라고요. 그 와중에 우리 헨리의 악당을 물리치는 기술은 날이 갈수록 발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작품에 스릴러보다는 '헨리의 성장기'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싶어요. 무채색이었던 그의 세상은, 비록 엄청난 채무를 떠안고 있기는 하지만 탐험공원을 물려받으면서 점차 활기를 띠기 시작해요. 처음에는 서로 이해하지 못했던 직원들과의 관계도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헨리의 조언을 그들이 받아들이고 협조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적인 소통을 기반으로 좋은 쪽으로 변화해 가는 데다, 무엇보다 라우라라는 존재가 헨리를 도저히 설명하기 어려운 공식 안으로 그를 몰아넣습니다.이제 그는 혼자였을 때보다 더욱 더 완벽해졌어요!
핀란드 언론으로부터 '헬싱키 누아르의 왕'이라는 찬사를 받는 작가 안티 투오마이넨. 긴박하고 스릴 있으면서도 따뜻한 미소가 배어나오게 해 준 [토끼 귀 살인사건]으로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도 제대로 눈도장을 찍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출판사 <은행나무>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