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쓸모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스튜디오오드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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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여행의 쓸모'를 생각해보는 시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로망이 하나 있었어요. 아이들이 아무리 어려도 여행을 멈추지 않겠다는 것. 그런데 현실은 생각보다 더 녹록지가 않더라고요. 아니, 현실적인 어려움보다도 저의 한계를 분명히 알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두 아이를 데리고 여기 저기 둘러보아야 하는 여행은, 저의 신경을 더 날카롭고 예민하게 만들 뿐이라는 것을요. 그래서 지금까지 여행지로 선택한 곳은 물놀이가 가능하고 리조트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항상 아쉬웠어요. 제 안에서는 여전히 이건 '진짜 여행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 같아요. 어쩌면 전 홀로 훌쩍 떠나는 그 자체를 그리워하고 있는 걸까요. 얼마 전 남편이 샌프란시스코로 출장을 다녀왔는데, 관광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홀로 다른 공간에 있는 그가 얼마나 부럽던지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저의 한계를 분명히 알게 된 이상 욕심내지 않기로 했어요. 제가 편안해야 가족들도 편안한 여행을 즐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물놀이나 휴식이 아닌 여행은 적어도 1년 뒤로 미루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에 여행서만큼 좋은 게 없는 것 같아요. 특히 정여울님의 글이라면요. 여행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이 세상 모든 여행지를 방문할 수는 없을 거예요. 그럴 때 깊이 있는 글은 상당히 도움이 됩니다. 작가가 전달하는 간접적인 경험이, 나의 여행지를 선택하는 데 있어 우선순위를 생각할 수 있게 해주거든요. 어디를 가야 나와 내 가족들이 행복할 수 있는가, 조금이라도 더 나를 성찰할 수 있는 장소는 어디인가 등을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줍니다.

 

정여울님의 글과 이승원님의 사진을 보는 내내 마음이 둥둥, 구름처럼 흘러갔어요. 초반에 이어지는 단편적인 글들은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시간 짧게 짧게 읽기에 참 좋았는데요, 마치 어떤 시간의 문이 존재해서 제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그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찰칵찰칵, 꼭 사진으로 순간을 포착하는 글들이었다고 할까요. 그 뒤에 이어지는 보다 긴 호흡의 글들을 통해 소개되는 여러 여행지들은 제 영혼에 날개를 달아 순식간에 저를 그 곳으로 인도해주었고요.

 

여행에 대해 여러 시각을 경험할 수 있는 글들이었어요. 팬데믹을 거치면서 과연 다시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 바이러스와의 싸움이라는 기나긴 터널을 지나왔지만 그럼에도 또다시 여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실감한 작가의 희열이 글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져왔습니다. 수줍음 때문에 다시 없을 경험을 놓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 글에서는 제 모습과 겹치는 것 같아 반가웠고 더 많이, 더 오래 여행하기 위해 실천하는 제로웨이스트 방법에 대한 글은 신선했어요. 여기에 정여울님이 사랑한 치유의 여행지 TOP 15는 따로 떼어서 보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었고, 그 모든 여행지를 거쳐왔다는 것에 부러움을 느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미국 뉴욕, 노르웨이 게이랑에르, 프랑스 지베르니는 언젠가 꼭 한 번 가보고 싶어요.

 

작가님은 여행의 쓸모에 대해 '일상의 뒤치다꺼리에 잠식되지 않는 시간, 타인의 시선에 일희일비하며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는 시간, 여행하는 시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저에게 있어 '여행의 쓸모'란 무엇인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네요. 결혼하기 전에는 지금 여기 있는 나와는 다른 내 모습을 발견하고 싶었던 게 컸던 것 같아요. 혼자 떠나보거나 가보고 싶었던 곳을 마음만 먹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행해보는 것. 그 모든 것에 결심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에게 '여행의 쓸모'는 가족들과 소중한 추억을 만드는 데 있어요. 특히 아이들에게 이렇게 넓은 세상이 있다고, 현재의 울타리를 넘어서면 너희들이 선택할 수 있는 세상이 가득하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도 우리 넷이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기억해주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이상하게 정여울님의 글은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줍니다. 여행 에세이를 읽으면 늘 그랬었지만, 이번에는 특히 정여울님의 글이라 더 마음이 울렁울렁, 마음 속 날개를 접느라 힘들었어요. 언젠가의 여행을 또 한 번 기약하며, 가고 싶은 장소 리스트라도 작성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 출판사 <스튜디오오드리>를 통해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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