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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빠진 소녀
악시 오 지음, 김경미 옮김 / 이봄 / 2023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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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운명을 써나가는 용감한 소녀, 세상을 구하다]
누구나 알고 있는 것에서 나아가 너무나 익숙한 이야기 중 하나가 '심청전'입니다. 눈이 먼 아버지를 위해 공양미 삼백 석에 바다에 제물로 바쳐졌다가, 용왕님의 자비로 연꽃을 타고 인간 세상에 다시 돌아와 왕과 결혼하죠. 어렸을 때부터 늘 궁금했었어요. 심청이는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이 극진해서 목숨을 구했는데, 그렇다면 바다가 노여워할 때마다 제물로 바쳐진 여인들은 어떻게 됐을까 하고요. 바다에 몸을 던진 소녀들은 심청이보다 효심이 지극하지 못하거나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거나 했던 걸까요? 아마도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전해내려온 이야기겠지만, 모두 심청이처럼 자발적으로 나서지는 못했을 거예요. 꽃다운 나이에 다른 사람들을 위해 죽음을 선택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한때 용왕의 사랑을 받dms 황제가 다스렸던 세상. 그 황제가 북쪽 세력의 침략을 받아 절벽에서 떨어져 죽고 용왕이 분노해 이 세계는 극심한 어려움에 빠져 있습니다. 용왕의 노여움을 달래기 위해 소녀들을 제물로 바쳐왔어요. 빼어난 미모 때문에 일찌감치 제물로 낙점된 심청, 그런 심청을 사랑하는 이가 미나의 오빠 준입니다. 마침내 심청이 제물로 바쳐지게 되던 날, 미나는 사랑하는 오빠를 위해 심청 대신 스스로 바다에 뛰어들죠. 눈을 뜨고 마주한 곳은 혼령들의 세상. 그 곳에서 만난 신(god 이 아닙니다) 과 기린, 남기와 함께 미나는 용왕의 분노를 잠재우고 저주를 풀어야 합니다.
미국이 주목하는 영어덜트 작가 악시 오의 [바다에 빠진 소녀]는 우리의 가장 유명한 고전소설 중 하나인 '심청전'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에요. 대신 심청이 아니라 미나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나의 운명은 나의 것, 내가 운명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운명이 자신을 쫓아오게 만드는 주체적인 캐릭터를 부각시켰습니다. 여기에 미스터리함과 로맨스가 가미되어 환상적인 판타지 문학을 창조해냈어요. 혼령들의 세상에서 한달이 지나면 미나 역시 혼령으로 변해버린다는 설정, 용과 이무기들의 전투, 탈과 다이 등 혼령들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모면하는 모습들은 흡사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떠올리게 하기도 했습니다.
'심청전'을 기반으로 다양한 우리 문화를 만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선녀와 나무꾼' 같은 전래동화, 은장도와 댕기, 비단 끈과 까치 설화 등의 등장이 이야기를 한층 더 풍부하게 해요. 이런 작품이 미국에서 탄생해 우리 문화를 널리 알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에 가슴이 벅차기도 합니다. 작가 악시 오는 한국계 미국인 2세대로 한국사와 문예창작학을 공부했는데요, 아시아인을 주인공으로 한 창작물이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한국 문화에 꾸준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고 합니다.
성인들이 읽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품이지만 청소년들이 읽으면 분명 열광하게 될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해요. 무엇보다 주체적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려는 미나의 모습은 우리 모두가 바라는 그것일 테니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향수를 느끼면서 재미있게 읽었어요. 미나의 사랑과 성장을 그리고 있는 [바다에 빠진 소녀] 속으로 풍덩! 뛰어들어 봅시다.
**출판사 <이봄>으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