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자비 납치사건 - 개정판
김진명 지음 / 이타북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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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통해 생각해보는 역사를 향한 태도]

 

가부키좌에서 가부키를 관람하던 황태자비 마사코. 황태자비라는 신분 때문에 누군가를 만나는 일조차 쉽게 허용되지 않았던 그녀가, 중고등학교 동창인 두 명의 여성과 잠시 휴게실에서 만나기로 합니다. 그러나 그 직후 벌어진 황태자비 납치사건!! 당혹스러움에 우왕좌왕하는 일본 경찰들 속에서 엘리트인 다나카 경시정이 수사를 지휘하게 되고, 주도면밀한 계획으로 경호팀을 따돌리고 동창생과 수행비서까지 기절시킨 뒤 유유히 가부키자를 빠져나간 범인이 여장남자라는 사실을 밝혀냅니다. 게다가 범인이 두 명이고 그 중 한명은 한국인 유학생이라는 것이 알려지자 일본 내 혐한 감정이 들끓고 외교 문제로까지 번지게 되죠. 범인의 요구는 단 하나, 명성황후 시해 당시의 한성공사관발 전문 제435호를 전 언론에 공개하라는 것 뿐입니다.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이 핍박받았던 이야기에는 두 주먹이 불끈 쥐어질 겁니다. 실제로 한국 고대사 수업을 받을 때 꾸벅꾸벅 졸던 아이들도, 일제강점기 시작과 의병, 독립운동 부분에서는 두 눈이 초롱초롱해져요. 비록 독립운동의 내부 사정과 무장단체 조직 내용에 있어서는 머리를 쥐어뜯더라도 우리 민족이 당한 핍박과 설움에 대해서는 가슴 깊이 한국인으로서의 무언가를 느끼고 있는 거겠죠. 아이들이 흥분하며 열중하는 수업 내용 중 하나가 바로 을미사변, 명성황후 시해사건이었습니다.

 

얼마 전 영화 <영웅>을 봤는데, 을미사변 내용이 나오더라고요. 낭인들이 명성황후를 짓밝고 칼로 몇 번씩이나 찌르고 장기를 꺼내고 시신을 불태우는 장면을 보는데 저도 모르게 울음이 터졌습니다. 아무리 힘이 없는 약소국이라 하더라도 어떻게 한 인간을, 한 나라의 국모를 저리 잔인하게 죽일 수 있나 하는 생각과 함께, 힘이 없는 나라는 참으로 바람 앞의 등불같은 존재구나 라는 좌절감이 다시 느껴졌습니다.

 

작가는 한성공사관발 전문 제435호에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서 차마 외부로 알려져서는 안 되는 내용이 담겨 있을 거라 추측했어요. 작품 속 범인은 황태자비 납치를 빌미로 일본이 과거의 잘못을 직시하기를, 그리고 왜곡된 역사를 기반으로 역사교과서를 만들어 그것을 이용해 잘못된 역사를 후세에 전수하고, 과거에 대해 반성과 사죄도 없이 고개를 빳빳이 세우려는 인물들에게 일침을 가하려 합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가 난무하지만 명성황후가 시해당할 당시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가 정확히 알 수는 없겠죠. 작가가 제시한 내용조차도 증명되지 않은 낭설이라 일축당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명성황후에게 사후 무슨 일이 벌어졌느냐가 아닐 거예요. 작가가 우리에게 묻고 싶은 것은 우리는 역사 앞에서 비겁하지 않을 수 있는지, 불의에 굴복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라고 생각합니다. 무릎 꿇은 자가 있는가 하면 궐기한 자도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분연히 일어난 이들이 오히려 총을 맞고 고문을 당했습니다. 이 옳지 못한 상황이 또 일어나지 말란 법 없으니까요. 과연 책을 읽는 너희는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겠느냐고 질문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책 속에서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마치무라는 역사교과서를 통해 '자학의 역사'에서 벗어나 '자랑의 역사'를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왜 잘못에 대해 사죄하는 것이 자학인가요. 그렇다면 과연 일본은 우매한 민족을 일깨워줬다고 역사를 왜곡하면서 제국주의에 물들어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핍박한 것을 진심으로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걸까요. 우리는 어린 아이들에게 잘못한 것이 있으면 마땅히 상대방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사회에서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 갖추어야 하는 기본 소양이니까요. 일본 또한 국제사회에서 성숙하게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대해 진심어린 참회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작가님도 일본을 적대하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잊지 말자고 하는 취지임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저 또한 같은 생각이예요. 부디 작가님의 의지대로 일본에서도 이 책이 출간되어 역사 왜곡에 문제에 있어 조금이라도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사실 책을 읽고 리뷰 쓰기가 힘들었어요. 마음은 무거운데 할 말이 없어서요. 다만, 오랫동안 김진명 작가님의 책을 읽어온 독자로서 다시 한 번 가슴에 뜨거운 불 하나 틔워봅니다. 애국심에 더해 우리가 앞으로 일구어나갈 역사 앞에서 어떤 길로 나아갈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 출판사 <이타북스>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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