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로 만든 마을 - 에밀리 디킨슨이 사는 비밀의 집
도미니크 포르티에 지음, 임명주 옮김 / 비채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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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로 만든 집에서 내내 행복했기를]

 

얼마 전 크리스티앙 보뱅의 [흰옷을 입은 여인]을 읽은 후 '에밀리 디킨슨'이라는 여인을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뱅의 꿈결같은 펜촉 아래에서 구름 위에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저 멀리 떠 있는 그녀를 붙잡고 싶었습니다. 어떤 인물에 대한 글을 읽었으나 마음이 채워지지 않고 공허하게만 느껴진 것은 처음이었어요. 그녀가 실재했었던 것은 맞는지, 혹 세상 사람들 모두 그녀가 존재했었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녀를 알고자 하는 독자에게 이런 마음을 갖게 한 것은, 에밀리 디킨슨, 독자를 만들어낼 노력을 하지 않았던 그녀의 탓(?)이 크다는 생각에 원망스러운 마음마저 듭니다.

 

한동안 답답한 마음으로 지내는 저에게 도미니크 프로티에가 쓴 [종이로 만든 마을] 원고가 도착했습니다. 가제본 서평단을 모집한다는 공고에 냉큼 신청했거든요. 이 원고라면 나를 조금은 더 가까이 에밀리에게 인도해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보뱅의 글을 읽고 이 원고를 읽기 전까지 그녀의 작품을 접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에요. 작가를 알기 위해서는 작품을 읽어보는 게 당연하니까요. 하지만 저는 '시'라는 세상을 걷기에는 지상에 너무나 깊이 속해 있는 사람인가 봐요. 시를 읽으면 읽을수록 에밀리를 도통 더 모르겠다는 마음 뿐이었습니다.

 

사실 도미니크 프로티에의 [종이로 만든 마을] 또한 '에밀리 디킨슨은 이런 사람이다!'라고 직접적으로 알려주는 것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여전히 그녀는 안개 속에 싸인, 속을 알 수 없는 여인입니다. 저자의 글을 한번에 하나씩 더듬어나가며 에밀리를 유추할 수 있을 따름이었으나 그녀와 관련된 두 번째 글이었기 때문인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있는 그대로의 그녀를 받아들이게 된 느낌이랄까요. 자신의 집, 끝내는 자신의 방에 은둔하여 자신만을 위한 글을 써내려간 에밀리인만큼 아무리 그녀를 연구하고 연구해도 온전히 그녀를 이해하는 이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스물다섯에 홈스테드로 다시 돌아온 에밀리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가족은 아마 집이 아닐까 생각했다.

p 29

에밀리의 생활 반경은 한정적이었습니다. 정원에 나가고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고 심신이 미약해진 어머니를 돌보고, 밤에는 자신만의 공간에서 내면으로 침잠하여 글을 써나갑니다. 그녀를 보지 못한 지 오래되었다고 수군거리는 이웃들의 말은, 아마 에밀리의 귀에 가닿지도 못했을 거라 짐작해봅니다. 자신의 시가 출간되어 책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에밀리의 마음을 꿰뚫어 본 듯 토머스 웬트워스 히긴슨은 그녀의 시를 읽고 이렇게 답해요.

출간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글은 출간하기에 너무 고귀합니다. 당신만을 위해 간직하세요. 그리고 괜찮다면, 저를 위해서도.

p 179

앞서 다른 이로부터 원하지 않는 출간과 원하지 않는 평을 들었던 에밀리는 히긴슨의 답을 듣고 반겼을 겁니다. 그녀에게 글은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오직 자신만을 위해, 자신이 그 세상에서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 쓴 생명과도 같은 것-이라 감히 짐작합니다.

 

이 시인의 마음을 우리가 어찌 모두 헤아릴 수 있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연구하고자 뛰어드는 것은 아닌지. 에밀리 디킨슨에 대해 대략적인 인상이라도 붙잡고 싶으시다면 이 책이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외의 잡히지 않는 부분은, 그녀의 시를 통해 붙잡아보려 노력할 수밖에요.

 

**출판사 <비채>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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