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딜 수 없는 사랑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복복서가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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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이언 매큐언!!] 

 

한때 '악마적 글쓰기'로 불리며 제 마음 속 한 자리를 차지했던 작가, 이언 매큐언. 예전 그 때의 저는 그의 세계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지점에서인가 완전히 이야기 속에 푹 빠져버렸고, [속죄]를 읽고나서는 다시 없을 작품이라며 저만의 평가를 내리기도 했죠. 국내 출간된 그의 작품은 (저의 기억대로라면) 전권 소장 중이고, 결혼하면서 많은 책을 친정으로 보내면서도 여전히 책장에 꽂혀있는 애장품(?)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견딜 수 없는 사랑]은 처음 들어보는 제목이라 국내 초역인 줄 알았는데 예전에 [이런 사랑]으로 번역된 적이 있더군요. 구입만 해놓고 아직 읽지 못한 [이런 사랑]을 [견딜 수 없는 사랑]으로 결국 읽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연인 클래리사와 소풍을 간 남자 조에게 일생일대의 사건이 벌어집니다. 소년을 태운 채 날아갈 위기에 처한 열기구를 발견하고 도움을 주기 위해 주저없이 달려간 조. 그와 함께 뛰어온 다른 네 명의 남성과 함께 열기구에 달린 밧줄을 붙잡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몸무게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결국 하늘로 떠오른 열기구. 누가 먼저였는가를 가릴 새도 없이 다섯 명의 남자 중 네 명이 밧줄을 놓아버리고, 가벼워진 열기구에는 단 한 명의 남자 존 로건만 매달려있게 됩니다. 결국 추락한 그 남자. 조는 자신이 최초로 밧줄을 놓은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괴로워하고, 충격적인 사건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저는 이야기의 초반을 읽을 때만 해도 이 작품이 윤리적인 문제를 다룰 것이라 예상했어요. 도움을 주기 위해 달렸으나 밧줄을 놓은 것에 대해 잣대를 들이대게 되다니, 참 아이러니하죠. 하지만 역시 이언 매큐언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의 예상과는 굉장히 다르게, 그는 독자에게 갑자기 '사랑'이라는 주제를 들이밉니다. 조와 함께 날아가는 열기구를 붙잡기 위해 노력했던 남자 제리 패드가 난데없이 조에게 사랑을 고백하면서 이야기가 급변해요. 제리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이 남자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어요. 제리의 주장은, 조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고, 그만의 방식으로 자신에게 신호를 보냈다고 하는데 제가 아무리 앞뒤를 살펴봐도 그런 상징들은 도저히 발견할 수가 없었거든요. 혹시 이 남자가 열기구 사고 때문에 심한 충격을 받아서 그런가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제리의 존재를 조의 연인 클래리사조차 믿어주지 않습니다. 제리가 보낸 편지도 조의 손글씨와 비슷한 것 같다고 하고, 자신은 집 앞을 지키는 제리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이야기해요. 순간 당연히 이런 생각이 듭니다. 혹시 제리의 존재는 조의 망상이 아닐까? 로건의 추락 장면을 목격한 조의 뇌가 충격을 감당하기 위해 제리라는 존재를 만들어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로건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았던 조가 제리의 등장으로 인해 그의 모든 신경이 제리에게 집중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제리가 등장한 시점부터 로건의 죽음으로 인해 받았던 양심의 가책은 뒷전으로 밀려난 느낌이었거든요. 

 

다만 로건의 죽음에는 그의 아내인 진이 의심하는 한 가지 미스터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 비밀 때문에 진은 남편의 죽음 앞에서도 온전히 슬퍼할 수가 없어요. 슬픔보다는 배신당했는다는 분노, 그가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의심때문에 그녀의 삶 또한 빠르게 무너져갑니다. 조와 진을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평소와 같은 보통 날들이었다면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 스스로를 괴롭히거나 옆에 있는 사람이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둘의 대처가 좀 더 이성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요. 일상에 생기는 그런 균열들이 한 사람을 얼마나 괴롭힐 수 있고, 망상에 빠트릴 수 있는지 그 위력을 새삼 느꼈다고 할까요. 

 

독자의 뇌가 빠르게 회전하며 무엇이 진실인가를 가늠하고 있을 때, 마침내 '드클레랑보 증후군'이라는 용어와 함께 제리의 존재가 수면 위로 드러납니다. 그 지점에 이르기 위해 작가는 지성과 감성, 이성과 신앙의 시각에서 여러 측면을 검토하며 논리를 펼쳐나가는데요, 이 과정이 이해하기 쉽다고는 결코 말씀드리지 못할 것 같아요. 마치 저의 뇌가 재배열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읽으셨을지 몰라도, 저처럼 다소 이 작품을 어렵다 생각하신 독자 분이라도 그의 작품을 계속 읽어나가다 보면 이런 작품은 이언 매큐언밖에 쓸 수 없다는 느낌을 받으실 날이 분명 올 겁니다. 분명 매력 있는 작가이니 포기하지 말아주시기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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