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6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황유원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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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한순간을 생각하며 새롭게 발견한 노인의 의지]

 

제 스스로가 세계문학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여러 번 말씀드렸을 거예요. 자고로 세계문학은 한 번만 읽는 게 아니라고, 여러 번 읽어야 감이 좀 오고 매번 다른 메시지를 발견하게 된다고요. 그 여러 번 읽은 세계문학 중 하나가 바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입니다. 학창시절에는 다른 작품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아서 골라 읽은 후 노인과 고기의 맞대결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어요. 헤밍웨이의 삶을 대하는 자세, 저만의 무언가를 발견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이번이 최소 세 번째로 읽은 것 같은데, 여전히 잘 모르겠는 부분도 있고, '아, 그랬었지'라고 기억을 되살리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 애한테 내가 별난 노인네라고 말했었지." 노인이 말했다.

"이제 그걸 증명해 보일 때가 온 거야."

 

그가 이미 그걸 수천 번이나 증명해 보였다는 사실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이제 그는 그걸 다시 증명해 보이려 하고 있었다. 매 순간이 새로웠고, 그걸 증명해 보일 때 과거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다.

p 72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시즌 4의 테마에 비추어 볼 때 노인의 '결정적 한순간'은 거대한 고기와 마주한 바로 이 순간일 겁니다. 사람들에게 '살라오', 누구보다 운 나쁜 사람으로 취급받고 있는 노인은 고기를 잡지 못하는 날이 허다했습니다. 그런 그의 곁을 따스하게 지키는 건 다정한 소년 미놀리 뿐이에요. 홀로 바다에 나가 거대한 고기를 맞닥뜨린 노인은 매순간 아이를 생각합니다. 저는 노인이 고기를 잡아 자신의 존재를 다른 사람에게 증명하려 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그가 고기를 지키고 가져가려고 했던 이유는, 아이를 위해서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살라오로 취급받는 노인을 세심하게 챙겨주는 아이가, 자신으로 인해 조금이라도 이상한 시선을 받지 않게 하려는 마음이요.

 

예전에는 노인이 바다에서 고기, 그리고 상어와 사투를 벌이는 모습에 집중해서 읽었는데, 이번에는 이상하게 노인과 소년의 관계에 더 눈길이 갑니다. 초반에 펼쳐지는 소년의 다정한 배려와 챙김, 그런 소년을 온화하게 바라보는 노인의 모습에서 더없는 따스함이 느껴져요. 그러니 증명해야겠다고 결심할 수밖에요. 오직 한 사람, 자신을 믿어주는 소중한 존재니까요.

 

헤밍웨이에 관한 책으로 [디 에센셜_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있습니다. 실린 작품 중 <깨끗하고 밝은 곳>이라는 이야기에 이런 문장이 등장해요.

 

모든 것은 '나다(무(無))'이면서 '나다'이고 또 '나다'와 '나다'이면서 '나다'일 뿐이지.

 

저는 그 때도 '나다'를 단순한 허무가 아니라 담담히 세상의 일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으로 해석했고, 노인의 태도를 바라볼 때마다 이 '나다'를 확인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온 몸으로 맞서 싸웠으나 고기를 지키지 못했고, 노인은 계속해서 살라오 취급을 면치 못하겠지만 사자 꿈을 꾸며 잠든 노인의 모습은 그 자체가 '나다'를 상징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과연 이 [노인과 바다]를 또 읽게 되는 날이 있을까 싶지만, 아이들도 있고 하니 한 두 번은 더 읽게 되지 않을까 예상해봅니다. 그 때는 또 무엇을 발견하게 되고, 무엇에 마음이 가게 될지 벌써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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