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앰버슨가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20
부스 타킹턴 지음, 최민우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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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사라지고, 영원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제가 <휴머니스트 세계문학>의 출간을 기다리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표지'입니다. 마치 한폭의 그림같은 표지가 너무나 매혹적이에요. 책을 소장하는 이유로 내용만큼이나 표지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저로서는 정말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의 표지들인데요, 특히 이번에 출간된 [위대한 앰버슨가]의 표지는 고풍스러우면서도 아련한 향수같은 감정이 느껴져 시즌4의 또다른 작품인 [악의 길]과 함께 '어느 책을 먼저 읽을 것인가'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아이들용으로 사용 중인 전면 책장에 언젠가는 휴머니스트의 세계문학 책들을 꽂아두게 되길 바라봅니다!

 

[위대한 앰버슨가]에서 '결정적 한순간'을 맞닥뜨린 인물은 이 집안의 유명한 망나니 '조지 앰버슨 미내퍼'입니다. 그를 아는 모든 사람이 언젠가 그가 천벌을 받아 나락으로 떨어지길 바라는 그런 인물이에요. 하지만 그에게 세상 사람들의 눈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저 '앰버슨가'의 일원으로 태어났고, 그 명성과 부가 계속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자신은 오직 주어진 것을 충실히 누릴 뿐이라고 생각하죠. 조건도 조건이지만 정신까지도 완벽한 금수저의 길을 걸어온 그가, 한 여성에게 매료됩니다. 그녀의 이름은 루시 모건. 바로 조지의 어머니 이저벨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한 유진 모건의 딸인데, 조지는 본능적으로 알아챘던 걸까요. 유진 모건이 자신이 받들어 모시는 '앰버슨가'의 명예에 위협이 될 거라는 것을요.

 

"내......어머니는 당신이 오, 오늘 여기 온 걸 전혀 알 생각이 없을걸. 다른 날이라 해도 마찬가지고!"

"내가 자네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이 집에서는 당신을 원하지 않아, 모건 씨. 지금이건 다른 어느 때건. 이만하면 이해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 말을 마지막으로 조지는 유진의 면전에서 문을 닫았다.

p 332

 

이미 영화로도 제작된 이 작품을 제가 만약 영화로 만든다면, 저는 이 장면을 비중있게 다루었을 것 같아요. 닫히는 문 소리를 엄청 크게 한다든지, 닫히는 문 사이로 조지와 유진의 눈길이 마주치는 장면을 슬로우로 진행시킨다든지 해서요. 제가 이 장면을 조지의 '결정적 한 순간'으로 꼽는 이유는, 이 때를 계기로 조지의 행동의 방향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한때 자신에게 청혼했다가 자동차 산업으로 성공가도를 달리는 남자 유진을 다시 만나게 된 이저벨은 분명 설레었을 겁니다. 처음에는 자신에게는 남편과 아들이 있다고 고개를 저었겠지만 남편이 병사하자 그녀와 유진 사이를 가로막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겠죠. 하지만 그녀에게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은 자신이 애지중지 키워온 아들 조지입니다. 뼛속까지 앰버슨가의 사람. 자신에 대한 평판은 평범한 사람들의 시기로 여기지만, 어머니의 평판은 추문으로 여겨 어떻게든 이저벨과 유진 사이를 막으려고 하는 아들. 결국 헌신적인 어머니인 이저벨은 아들의 소망, 혹은 강압에 못이겨 유진과 결별하게 됩니다.

 

육성으로 '이눔의 자식, 그러지 마'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조지는 끝까지 이저벨에게 잔인해요. 그리고 앰버슨가는 시대의 흐름에 의해 역사 속에서 사라져갑니다. 그 과정에서 모든 걸 잃게 된 조지는, 한때는 루시에게 '자신은 직업을 가질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고 떵떵거렸던 조지는, 고모를 부양하며 먹고 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화학 회사에서 일하게 되죠. 작품의 초반에 묘사된 앰버슨 가의 부와 명예는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후회와 절망만이 자리하고 있을 뿐.

 

하지만 조지에게 '결정적 한 순간'이 있었듯, 유진 모건에게도 '결정적 한 순간'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으로 인해 아마 저를 비롯한 많은 독자들이 결말에 만족하지 않았을까요. 100여 년 역사의 퓰리처상을 두 번 수상한 네 명의 작가 중 하나인 부스 타킹턴. 게다가 [위대한 앰버슨가]는 모던 라이브러리에서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영어 소설 100선'중 하나에 꼽힌 수작입니다. 독서의 재미를 정말 충분히 맛보게 해주었던 재미있는 작품이었어요. 부스 타킹턴의 또 다른 작품들도 어서 만나보고 싶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저는 이 작품에서 영화 <타이타닉>을 떠올렸습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타이타닉이 출발할 때의 환성과 그 호화로운 분위기는 이 배가 영원히 그 명성을 유지할 것만 같았죠. 하지만 배는 침몰하고 역사상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타이타닉의 한때 누렸던 명성과 그 침몰은, 앰버슨가의 그것과 닮아 있어 특히 영화를 애정하는 저로서는 그리운 느낌으로 [위대한 앰버슨가]를 바라보았던 것 같아요. 혹시나 저처럼 <타이타닉>을 즐기신 분들이라면 이 작품에서 비슷한 감성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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