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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론테 자매, 폭풍의 언덕에서 쓴 편지 - 뜨겁게 사랑하고 단단하게 쓰는 삶 ㅣ 일러스트 레터 3
줄리엣 가드너 지음, 최지원 옮김 / 허밍버드 / 2023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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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렬하고 열정적인 삶의 편린들]
<일러스트 레터>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은 '브론테 자매'의 편지입니다. 사실 처음부터 이 시리즈에 관심이 컸던 건 아니에요. 그런데 두 번째 책인 '제인 오스틴'편이 정말 너무 좋았어요. 이유를 콕 집어 말할 수는 없는데 예전부터 제인 오스틴에 대해 동경이 컸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글들이 생생하게 와 닿았어요. 1편인 '반 고흐'의 편지도 궁금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의 생이나 편지를 다룬 책들은 다른 책들로도 이미 충분히 접했다 생각했기 때문에 '제인 오스틴'이 아니었다면 전 이 고풍스럽고 품격있는 시리즈를 그대로 놓칠 뻔 했네요. 상상만으로도 아찔합니다.
'제인 오스틴'에 실린 글도 글이지만 삽화들의 매력도 무시할 수 없었어요. 아기자기하고 귀족적이며 우아하고 따스한 분위기였음에 반해 '브론테 자매'의 삶과 사랑이 녹아든 [브론테 자매, 폭풍의 언덕에서 쓴 편지]의 글들과 삽화들은 정 반대의 느낌을 자아냅니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에서 맛보았던 황량함과 흡사하다고 할까요. 그녀들의 삶이 일평생 행복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겠지만 이상하게도 그녀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와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남은 남매들이 보낸 시간들이 일렁이는 촛불처럼 희미한 슬픔으로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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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이른 죽음, 기숙학교에 들어갔다가 얻은 병으로 연달아 세상을 떠난 위의 두 자매. 그로 인해 고립된 생활을 이어나간 남매들이지만, 타인들의 시선과는 다르게 오히려 그들에게는 가치있고 보람된 시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딸들에게 책을 즐기라고 권한 데다 시사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브론테 씨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조카들이 가사에 능숙해지기를 바라며 독서를 다소 제한하기는 했지만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오는 것은 허락했던 이모 브랜웰 양도요. 죽음과 상실로 상처를 간직한 이들이 함께 무언가를 읽고 공유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져 오는 느낌이에요.
게다가 어릴 때부터 수없이 들었던 아일랜드의 전설과 영국 북부 지방의 민담, 그리고 황야. 어찌보면 더없이 쓸쓸하고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그런 요소들이 브론테 자매들에게 일생의 역작을 창조하는 데 일조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녀들의 그 모든 시간과 삶들이 녹아들었던 작품들. 다양한 편지와 작품들이 심도있게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게 도와줍니다. 게다가 그림이나 조각같은 것들도 찰떡이에요! 책을 읽는 시간만큼은 그녀들과 함께 시간을 공유하는 것 같아 가슴이 벅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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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자매들의 이름이 아니라 필명으로 작품을 발표한 데서 그 시대 여성들에게 요구된 것이 글쓰기가 아니었음이 느껴지기도 했어요. 이모인 브랜웰 양이 자매들에게 엄격하게 가사 노동을 요구했던 이유는 시대의 흐름이었을 거예요. 그 안에서 재능을 꽃피운 자매들을 생각하면 인간의 삶이란 얼마나 숭고한 것인지, 글이란 문학이란 어떤 이에게는 얼마나 숨구멍 같은 것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의 삶을 엿보고 나니 [폭풍의 언덕], [제인 에어] 같은 작품들을 하나하나 다시 정독해보고 싶어졌어요. 분명 예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라 확신합니다. 더불어 반 고흐, 제인 오스틴, 브론테 자매들의 뒤를 이을 <일러스트 레터> 시리즈의 다음 주인공이 누가 될지 무척 기대가 커요!
** 출판사 <허밍버드>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