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양식·새 양식 열린책들 세계문학 284
앙드레 지드 지음, 최애영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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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의 가치있는 삶을 위하여]

 

살면서 어떤 생각을 하세요? 한때 '생각하면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라는 문구가 유명했었죠. 저도 이 문구를 딱 듣자마자 멋있다는 생각에 '생각하면서' 살아보려고 꽤 노력했는데 어느 순간 의문이 들었습니다. 매순간 생각하면서 살아가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 않습니까. 어느 날은 시간에 쫓겨 주어진 일을 모두 해내는 것만으로도 셀프 칭찬을 해주고 싶은 날도 있잖아요. 생각보다 행동해야 하는 날도 있고요. 아마 저 '생각'이란 자신이 정한 삶의 방향과 가치를 항상 되새기면서 살아가라는 말 같은데요, 요기 이 작가님은 정말 말 그대로 매일매일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 중 한 명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열린책들의 284번째 세계문학은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 새 양식]입니다. 항상 세계문학의 높은 벽을 실감하지만 이번에는 특히 각오를 단단히 하고 읽었어요. 앙드레 지드의 작품 중 읽은 것은 [좁은 문] 정도이고, 그마저도 쉽지 않다 생각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나요. 소설도 어려웠는데 '지상에서의 쾌락과 행복을 최대한 누리겠다는 결단과, 그 실천을 통해 몸소 경험한 환희를 기록한 비망록이자 젊은이들에게 건네는 〈탈주와 해방의 참고서〉이다. 줄거리도, 연대기적 순서도 없는 이 독특한 책은....'이라는 소개글을 보니 저도 모르게 '어험!' 소리가 절로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도 머리를 쥐어뜯으며 읽겠구나 싶었습니다.

 

아마 삶을 대하는 태도의 깊이가 다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작품은 죽은 뒤 천국에서의 기쁨이 아닌 지상에서의 쾌락과 행복을 최대 가치로 여기는 작가의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비망록의 의미 자체가 '잊지 않으려고 중요한 골자를 적어둔 책자'를 의미한다고 하니 작가의 속마음이 생생하게 담겨 있는 이 책이야말로 '비망록'이라는이름이 더없이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개인의 생각과 자유를 갈망하는 욕구에 따라 안정된 삶에서 탈주할 것을 권하는 앙드레 지드.

 

그럼에도 작가가 추구하는 현실에서의 쾌락은 타인을 짓밝고 얻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나는 불행을 발판 삼아 추종되는 행복을 원하지 않아. 다른 사람에게 빼앗아 얻는 부를 원하지 않는다는 말이지. 나의 옷이 타인을 헐벗게 한다면, 나는 차라리 벌거숭이로 지낼 것이다.

p247

 

캬~세상에는 내가 벌거숭이로 지내기보다 타인의 옷을 빼앗아서라도 따뜻해지려는 사람들도 있을텐데 말입니다. 즉, 그가 얻고자 하는 행복과 즐거움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는 말이겠죠. 분별없는 자유와 이기적인 행복이 아닌 깊이와 가치가 있는 진정한 보물입니다. 만약 작가가 타인은 아랑곳없이 오직 자신만을 생각하라는 의미의 기록을 남겼다면 이 책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문학의 존재 이유는, 이기심이나 방종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니까요.

 

마지막으로 그녀는 그 모든 약들을 당시에는 아주 비싼 값에 산 것들이라고 했다.

그때 나는 그녀가 그 약품들을 내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p305

 

이 문장이 등장한 일화 속 여인은 장롱에 오래된 약들을 한가득 보관하고 있습니다. 이미 자리가 꽉 차 더 이상 무언가를 넣을 수 없는 상태였죠. 하지만 그녀에게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약들이었어요. 그녀는 약병들을 꺼내 보여주며 약병과 관련된 추억(?)을 풀어놓기 시작합니다. 그녀가 약병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지 않더라도 예전에 아주 비싸게 구입했기 때문이에요. 그녀와의 만남을 기술한 후 앙드레 지드는 '우리는 <이 세상>을 지체 없이 즉각적으로 살아야 해'라고 역설합니다. 약병이라는 과거에 얽매인 그녀. 과거의 책과 그 추억에 얽매여 사는 저. 얼마 전 책장을 정리하면서 여전히 많은 책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저를 만난다면 작가는 저를 꾸짖을까요.

 

소설을, 문학 작품을 읽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을 수 없는 상황에 대한 간접경험과 타인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위해서라고 생각해요. 소설에 가미된 재미있는 요소가 배제된 작가의 솔직하고 날것 그대로의 목소리를 전부 받아들이고 이해하기에는 저의 소양이 한참 부족하지만, 작가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저에게 앙드레 지드는 어째서인지 늘 깊이 침잠되어 있는 그런 이미지였는데, 이번 작품을 통해 그를 생생한 생명체로 여기게 된 것 같은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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