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대를 뛰어넘어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
<일러스트 레터> 라는 이름으로 출간되는 편지 시리즈. [반 고흐, 프로방스에서 보낸 편지]의 뒤를 이은 두 번째 주인공은 제인 오스틴입니다. 사실 제인 오스틴이 쓰지 않았다면 그녀의 작품들은 제 취향이 아니에요. 연애와 결혼에 집중된 소재, 마치 그것이 전부인 양 묘사되는 소설 속 주인공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캐릭터니까요. 하지만 앞에서도 말씀드렸듯, 제인 오스틴이니까요. 19세기 영국에 살고 있던 여성들에게 결혼은 무엇보다 중요한 삶의 관문이었고, 여성이 집중할 수밖에 없는 시대적 요소로 강요되었을 겁니다. 그 안에서 삶의 본질과 방향을 고민하는 그녀들의 모습은 사실 현재의 우리와 별반 다를 것이 없을지도요. 그런 보편성 덕분에 제인 오스틴의 작품이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지금까지는 제인 오스틴이 창조해낸 캐릭터들을 통해 그녀의 삶을 엿보았다면, 이제 그녀의 편지를 통해 제인 오스틴의 진짜 삶을 들여다보는 시간입니다. 19세기의 비혼 여성이자 익명 작가에서 로맨스 소설의 여제가 된 제인 오스틴의 삶이, 그녀가 살았던 스티븐턴, 바스, 사우샘프턴, 초턴, 윈체스터에서 보낸 편지들 속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났어요. 마치 누군가의 일기를 엿보는 듯한 두근거림과 설렘, 저 멀리 상상 속에만 머무르고 있던 인물을 직접 만나게 되는 것 같은 현실감이 책 속에 녹아들어 있습니다.
전 한편으로 편지들의 분위기가 너무 우울할까 봐 걱정하기도 했어요. 얼마 전 읽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통해 제인 오스틴이 살았던 시대에 여성의 글쓰기가 어떤 의미를 갖게 되는지 조금 알게 되었거든요. 차분히 글을 써내려갈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 없이 거실 한쪽에서 작품을 집필해야 했던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관 같은 것이 담겨있을까 봐 조금은 묵직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우려했던 것과는 너무나 다르게 그녀는 편지 속에서도 생기 넘치고 다정하게 살아 있더군요.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애정 없는 결혼을 하느니 차라리 안 하는 편이 더 나아', '독신 여성은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끔찍한 경향이 있어' 등 제인 오스틴 작품의 결을 엿볼 수 있는 문구들, 작품의 일부분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 책이 유독 사랑스럽게 느껴졌던 이유는 클래식하고 빈티지한 19세기 영국 삽화가 170여 점 수록되어 있기 때문인데요, 예전 고풍스러운 시대에 로망을 가지고 있는 저에게 무한한 감동을 선사해 준 부분이었어요. 어떻게 책이 이렇게도 사랑스러울 수 있나 자꾸만 들여다보고 싶어지게 됩니다.
예전부터 좋아했던 제인 오스틴이지만 이제는 그녀가 마치 친구처럼 여겨져요. 어디선가 그녀가 보낸 편지가 저에게도 도착할 것만 같은 그런 기분입니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그녀의 목소리, 편지, 이 모든 것이 여기에 담겨 있어요. 제인 오스틴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는 독자라면 틀림없이 만족할 <일러스트 레터>입니다!

** 네이버 독서카페 '리뷰어스클럽'을 통해 <허밍버드>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