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어둠
렌조 미키히코 저자, 양윤옥 역자 / 모모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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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천 정사]라는 작품을 접한 뒤부터 저는 렌조 미키히코의 매력에 빠져버렸습니다. 개인적으로 [회귀천 정사]는 일반적(?)인 작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을 이루지 못한 남녀가 동반자살을 하는 것을 뜻하는 정사(情死). 연인과의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다 못해 죽음을 선택한다는 소재는 아름답게 느껴지면서도 어딘가 오싹해지게 만드는 부분이 있어요. 그런데 저는 그 단 한권으로 이 작가가 내뿜는, 말로는 다 설명하기 어려운 기이한 작품 분위기에 매료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저녁싸리 정사], [백광] 이후 접하게 된 [열린 어둠]에 거는 기대가 컸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대부분의 작품이 무엇이 진실인가, 그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미로처럼 느껴졌지만 그 중에서도 <화석의 열쇠>는 오싹함에 슬픔을 동반하는 작품입니다. 밀실 사건을 기반으로 소녀를 살해하려 한 범인을 찾아가는 이야기인데요, 처음에는 소녀에게 두려움을 느꼈다면 작품 마지막에는 다른 이들에게 분노와 두려움을 느꼈어요. 등장인물이 어린 소녀인지라 한층 더 깊이 감정이입을 하긴 했지만, 아홉 편의 단편들은 모두 인간들의 채워지지 않는 욕망,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너도 가질 수 없다는 이기심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날것 그대로의 욕망들이 책을 뚫고 넘쳐나올 듯 흘러나와서 책 자체가 요물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총 아홉 편의 단편이 실린 [열린 어둠]은 일본에서는 1980년대에 처음 출간되었습니다. 이후 2014년에 '복간 희망, 환상의 명작 베스트텐'에 1위로 꼽히면서 복간이 이루어졌는데요, 각각의 작품마다 독특하고 개성적인 매력을 풍기는 이야기들은 그야말로 '주옥같다'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 정도입니다. 몽환적인 느낌의 현실인지 꿈 속인지 혼란스럽게 만드는 작품은 물론, 고전 추리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이야기, 서양의 느와르 작품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야기까지 읽는 족족 탄성이 나오게 만드는 단편들이었어요. 페이지가 줄어드는 것이 아까워 한편 한편을 정말 아껴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장편소설보다 단편소설에서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는 작가라 생각됩니다. 지금은 [회귀천 정사]나 [저녁싸리 정사]는 절판이니, 일단 [열린 어둠]으로 렌조 미키히코의 매력을 만나보시면 어떨까요! 출판사 공식계정에서 충격적인 반전에 놀라지 않는다면 전액 환불해주는 이벤트도 진행 중이니, 큰마음(?) 먹고 도전해 보세요. 하지만 아마도 '내가 한 번!'이라고 생각했다가, 결국 이 작가가 주는 재미에 흠뻑 빠지실 거라 감히 예상해봅니다!


 

** 출판사 <모모>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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