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장난감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3
로베르토 아를트 지음, 엄지영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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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향한 실비오만의 저항]

 

시즌1이 펀딩되었을 때부터 꾸준히 모으고 있는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어느새 시즌3까지 출간되었습니다. 시즌마다 다른 소재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매력이 풍부한 세계문학 라인인데요, 이번에는 '질투와 복수'를 주제로 총 다섯 권의 작품들을 만나보실 수 있어요. 그 중 제가 첫번째로 만나게 된 작품은 로베르토 아를트의 [미친 장난감]입니다. 제목도 제목이지만 표지 한 번 보세요. 어떤 인물, 아마도 주인공이라 짐작되는 인물의 얼굴 부분이 불길에 휩싸여 있습니다. 자신을 향한 분노일까요, 아니면 다른 대상을 향한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는 도구로 자신을 이용한 것일까요. 처음 접하는 작가인데다 내용을 유추하기가 그리 쉽지 않아서 처음부터 두 눈 부릅뜨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주인공 실비오는 책도 많이 읽고 발명에 관해 일가견이 있는 재능많은 소년이었습니다. 도적문학(도둑이나 강도 등 악당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펼쳐지는 모험담)의 즐거움과 스릴에 빠지기도 하고, 자신의 발명품으로 친구들 사이에서 대단하다는 평을 듣기도 하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 같은 건 가질 수가 없었어요. 어렸지만 자신의 현실을 직시했기 때문일까요. 친구들과 작당해 빈집이나 금고를 터는 한 때의 행위조차 실비오의 괴로운 몸부림으로 보입니다. 그의 어머니는 열 다섯이 된 그에게 '이제 너도 돈을 벌어야 하지 않겠냐' 라면서 노동하기를 원하죠. 이제 너를 먹여 살리기가 힘들다면서요. 과연 내가 실비오의 엄마였다면 저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싶었지만, 어쩌면 그의 엄마도 삶이 주는 절망에 속수무책이었던 게 아닐까요.

 

그렇게 처음으로 일자리를 갖게 된 실비오는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갇혀버린 세상에서 꼼짝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합니다. 일하는 서점이 불타버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석탄을 던지는 시도까지 해보지만, 운명은 그의 그런 시도조차 비웃는 듯 해요. 그런 그에게 일말의 서광이 비친 것은 항공 정비사 실습생 모집에 선발된 일입니다. 그의 장기인 발명이 빛을 발한 거예요. 하지만 인생이 바뀔 거라는 희망도 잠시, 그의 똑똑함은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며 결국 쫓겨나고 맙니다. 그의 사방이 벽으로 막혀있는 듯한 갑갑함에 저까지 한숨이 나올 정도였어요. 그런 그를 유혹하는 한 절름발이. 실비오는 그의 계획을 범행 대상에게 알리고 그를 배신하면서 자신만의 숨 쉴 방도를 찾아냅니다.

 

이렇게 내용에 대해 다소 길게 언급하게 된 이유는, 제가 그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쓰면서 정리하다보니 그가 어느 지점에서 자유를 얻게 되었는지 살짝 알 것도 같은 기분입니다. 그의 행복은 문학 안에 있었습니다. 책을 읽을 때만이 온전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지만 결국 엄마에게 등 떠밀려 노동이라는 현실 세계로 돌아와야 했죠. 절름발이를 배신하기로 한 순간 떠올린 도적문학의 주인공 로캉볼. 실비오의 배신을 정당화 시켜주는 것은 문학 작품 속 로캉볼의 배신입니다. 누구보다 책 속에서 머물고 싶어했던 실비오는 책의 내용을 따라하면서, 허구의 세상을 현실에 발현시킴으로써 자신의 삶의 의미와 기쁨을 얻게 된 게 아니었을까 감히 짐작해봅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그만의 세상. 그의 이런 생각은 '미친 장난감'이라 불릴 만하지만 현실 앞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었던 실비오가 세상을 향해 던지는 저항의 돌인만큼 역시 '복수'라는 주제에 걸맞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현실을 대변하는 작품이지만, 현실의 벽 앞에서 좌절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도 분명 울림을 줄만한 소설입니다. 이해하고 분석하느라 역시 머리를 쥐어뜯기는 했으나 그 깊이를 이해하고 나니 묵직하게 다가오는 [미친 장난감]. 다른 독자들은 어떻게 읽으셨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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