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샤의 후예 1 : 피와 뼈의 아이들
토미 아데예미 지음, 박아람 옮김 / 다섯수레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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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제일리는 검은 피부에 하얀 머리카락을 가진, 마자이의 후손입니다. 삶과 죽음을 다루는 마자이인 사령술사였던 엄마는 마자이를 증오하고 배척하는 사란 왕에 의해 목숨을 빼앗겼고, 수많은 마자이들이 마법과 목숨을 잃은 대학살의 날 이후 그들은 노예 취급을 받으며 열악한 환경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어요. 마마 아그바로부터 격투를 배우며 가슴 속에 자리잡은 복수심과 분노를 다스리던 어느 날, 사란 왕이 올린 세금을 내기 위해 수도 라고스로 생선을 팔러 가게 된 제일리. 그 곳에서 사란 왕의 딸이자 절친한 친구면서 마자이였던 빈타를 잃은 공주 아마리와 만나게 됩니다. 마자이들의 잃어버린 마법을 찾아줄 열쇠가 될 두루마리. 그 두루마리로 인해 아버지 사란 왕이 마법이 돌아온 빈타를 무참히 살해하는 장면을 목격한 아마리는 두루마리를 훔쳐 도망가고, 제일리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나게 되죠. 그러나 곧 뒤쫓아온 사란 왕의 군대, 아마리의 오빠 이난. 삶의 거처를 잃게 된 제일리와 그녀의 오빠 제인, 그리고 아마리는 마마 아그바의 예언에 따라 마자이들의 운명을 바꿀 거대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이상하게 이 작품의 제목과 표지를 본 순간부터 이 책은 꼭 읽어야겠다,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피와 뼈의 아이들이라는, 다소 자극적이지만 어떤 호소같은 것이 깃든 제목과 검은 피부에 하얀 머리카락을 한 (아마도)제일리의 모습에서 강렬한 느낌을 받았거든요. 결과는 대만족입니다. 격투봉을 이용해 상대를 제압하는 제일리의 모습과 그런 그들을 억압하는 사란 왕의 위병들과의 대립은 인상적인 시작을 열어주었어요. 언제 어디서 죽음을 당할지 모르는 운명을 끌어안고, 사랑하는 엄마가 무참히 살해당한 모습을 가슴에 간직한 채 하루하루 두려워하면서, 그러나 강인하게 살아내고자 하는 제일리의 용감한 모습에 판타지 장르를 주름잡을 주인공의 탄생을 느꼈습니다. 무엇보다 작품이 재미있게 다가온 이유는 입체적으로 그려진 캐릭터들이에요. 누구보다 동생을 사랑하고 그녀의 안녕을 바라기 때문에 무모한 행동을 하지 않길 바라는 굳건한 제일리의 오빠 제인, 궁전에서 공주로서 새장 속의 새처럼 살았을 수도 있었지만 가까운 사람의 죽음으로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기로 결심한 아마리, 아버지 사란 왕의 명령에 따라 마자이들과 그들의 마법을 억압하려 했지만 그 자신이 마법을 얻게 되면서 색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이난까지 하나하나의 캐릭터들의 특징이 뚜렷하고 개성적이어서 마치 현실에서 살아 숨쉬는, 실제 인물을 보는 듯 했습니다.

 

가장 독특한 점은 아마도 주인공인 제일리가 검은 피부에 하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다는 점일텐데요, 작가인 토미 아데예미 또한 나이지리아계 미국인입니다. 그는 이 책을 쓰기 전, 그리고 수정하면서 계속 눈물이 났고, 뉴스를 켤 때마다 무장하지 않은 흑인 어른들과 아이들이 경찰의 총에 맞아 쓰러지는 사건을 연일 접했다고 말합니다. 이 책을 통해 작게나마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었다는 작가. 작품 속에서 제일리는 마자이이기 때문에 억압을 당하지만, 사실 그녀는 피부색이 검은 많은 이들을 대변하는 인물이기도 해요. 그녀가 마자이의 후손이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피부색으로 인해 차별과 멸시와 수모를 당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만큼 이 책의 현실 비유는 매우 생생합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부조리한 일들에 대해 보여주죠. 작품에 등장하는 마법과 환상적인 요소들은 매혹적이지만 이 안에서 다루어지는 고통과 상실에 관한 이야기는, 이 책이 단순한 판타지물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상징적인 요소들을 떠나 이 책은 매우 재미있습니다. 마자이들의 마법을 되돌려 줄 의식을 치르기 위해 세 사람이 겪어야 하는 그 모든 시련과 맞서 싸우면서 성장해나가는 모습, 그 와중에 만나게 되는 수많은 사람들과 모험들, 마법이 발현되는 모습, 그리고 함께 나란히 서는 것이 도저히 상상되지 않았던 이들의 로맨스까지 독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할 요소들이 집합되어 있어요. 그 모든 장면들이 생생하고 벅차게 다가와서 영화로 만들어져도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21세기 폭스와 영화 계약을 체결했다고 하는데, 과연 제일리 역할은 누가 맡게 될지, 무척 기대됩니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아프리카 어디쯤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환상적이고 매혹적이지만 고통스러운 이야기. 우리는 모두 '피와 뼈의 아이들'이라는 것을 깨달은 제일리의 행보와 그녀를 둘러싼 인물들의 이야기, 그리고 작품 안에서 작가가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가 어떻게 이어질 지 어서 다음 편을 읽어보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최고의 판타지물이었다고 자부해봅니다.

 

** 네이버 독서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다섯수레>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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