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클 사일러스
조셉 셰리던 르 파누 지음, 장용준 옮김 / 고딕서가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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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집, 여성]과 [숲속의 로맨스]의 뒤를 이어 <고딕서가 시리즈> 대단원의 막을 장식해준 작품은 조셉 셰리던 르 파누의 [엉클 사일러스]. 앞의 두 작품과는 표지의 연결성이 떨어지지만 개인적으로 영화 포스터 같은 느낌이 참 좋았다. 새벽인 듯도 하고 깊은 밤인 듯도 한 숲 속 한가운데 우뚝 자리잡은 남자의 그림자. 큰 키와 늘씬하게 쭉 뻗은 다리들로 인해 매력적인 남자 주인공을 상상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작품 초반 여주인공 모드가 엉클 사일러스의 초상화를 발견했을 때의 묘사 덕분에, 세 작품 가운데 가장 매력적인 남자주인공의 출현이라고 멋대로 상상해버렸다!

 

흰 가죽바지에 무릎까지 오는 가죽 장화, 담황색 조끼와 초콜릿색 코트 차림이었고, 긴 머리는 뒤로 빗어 넘긴 스타일이었다. 이목구비가 눈에 띄게 품위 있고 섬세했다. 그러면서도 그저 멋쟁이나 세련된 남성 부류와는 구별되는 결의와 열정이 묻어났다.

p27

 

하지만 모드에게 늘 '기약없는 여행'을 언급해온 그녀의 아버지만 해도 70 언저리. 그러니 그의 동생인 엉클 사일러스 또한 비슷한 나이대라는 것을 짐작했어야 마땅하거늘, 단순히 표지에 취해 너무나 멋진 엉클 사일러스를 고대했던 나로서는 중반 부근부터 등장하는 그의 출현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때의 실망감이란!! 그러나, 뒤에서도 다시 한 번 언급하겠지만 [엉클 사일러스]에는 멋진 남자주인공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모드가 매력을 느끼는 남자들이 두 어명 등장하나, 그들은 이 작품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지 못했다. 이 작품은 어디까지나 모드에 의한, 모드를 위한, 모드의 이야기이므로!!

 

스웨덴보리라는 다소 독특한 종교를 믿었던 아버지와 그가 남긴 의문의 유언장. 오랫동안 사일러스와 단절된 생활을 이어온 모드의 아버지는, 어째서인지 자신의 죽음 뒤에 모드의 생활을 사일러스가 맡아줄 것을 부탁한다. 그가 살인사건에 휘말렸던 것, 그로 인해 가문의 이름에 먹칠을 했던 것, 도박에 빠져 진 빚을 모드의 아버지가 일부 갚아주었던 것 등 사일러스에 대한 경계심을 높이기에 충분한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모드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사일러스의 그의 자녀들이 살고 있는 바트램-호프로 향한다. 초중반이 이런 상황 설정에 페이지를 할애했다면 사일러스와 살기 시작한 시점에서 모드의 진정한 모험(?)이 시작되었다고 할까.

 

이 작품의 매력 중 하나는 뚜렷한 개성을 지닌 인물들과 그 인물들을 둘러싼 분위기라고 하겠다. 일단 모드의 가정교사를 맡았던 마담 드 라 루지에르. 분명 마녀 아니면 마녀를 추종하는 사람들 중 하나라고 확신할만큼 너무나 뻔뻔스럽고 대담하다. 그녀가 등장하는 페이지에서는 들어보지도 못한 그녀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듯 하고, 그녀가 사용하는 프랑스어가 환청처럼 들리는 듯 했다. 그리고 엉클 사일러스. 초반에 너무나 멋진 매력남을 상상했던지라 괴리감을 느낀 것은 사실이나, 이 고딕소설에서 분위기 메이커로 손색이 없을만큼 괴이하다! 아편에 중독되어 넋이 나간 모습에 대한 묘사라든지, 모드의 동정과 애정을 이용해 그녀의 재산을 빼앗으려하는 모습은 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마지막까지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정말로 말 그대로 모두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막대한 재산의 상속녀 모드. 과연 그녀의 친구는 누구이고, 적은 누구인지 마지막까지 혼란스러웠다. 그런 점에서 현대의 심리 스릴러와 비슷한 점이 많다. 나처럼 혼란스러워하는 모드의 내면, 곁에 있는 사람들 모두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리고 밝혀지는 진실. 고딕소설에서 초자연적인 현상 뿐만 아니라 인물의 심리 묘사가 다루어졌다는 점이 신선한 충격이었다.

 

[엉클 사일러스]는 고딕소설이자 모드의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마담 드 라 루지에르에게 위협받던 소녀가, 사일러스와 함께 생활하면서부터는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나타내는 아가씨로 성장했다. 그 와중에 방치되었던 사일러스의 딸 밀리를 보살피면서 그녀와 평생의 우정을 다지기도 한다. 싫은 것은 싫다고 말할 줄 알고, 위기 속에서 모드를 구해낸 사람은 바로 모드 자신이었다. 남자 주인공에게 의지해 위기에서 벗어났던 [숲속의 로맨스] 의 아들린과는 대조되는 모습이기도 하다.

 

무려 805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었지만 작가의 필력과 재미난 이야기에 정신없이 달린 듯한 기분이다. 마지막까지 모드가 어떻게 될지 가늠할 수가 없어서 무척 조마조마했다. 개인적으로 표지도, 이야기도 시리즈의 세 권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 그의 작품은 계속 찾아 읽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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