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합
다지마 도시유키 지음, 김영주 옮김 / 모모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두 눈을 부릅떴으나 결국 당했다!!]

 

처음에는 이리 단조로운 추리소설이 다 있나 싶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 어른들의 이야기와 종전 후 1950년대, 부모님들의 인연으로 어울리게 된 아이들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전개되는[흑백합]은, 제목에서부터 고전적인 추리의 맛을 암시한다. '단 한글자도 놓치지 마라, 모든 것이 복선이며 단서다!'라는 문구를 보고 시작부터 기합을 잔뜩 넣은 채 두 눈 부릅뜨고 읽기 시작했는데, 나는 또 영락없이 당한 것 같다. 이야기가 끝나고 진실이 밝혀질 듯한 순간 결국 페이지를 앞으로 되돌려야 했으니 말이다.

 

아버지 친구의 아들인 가즈히코와 우연히 마주치게 된 소녀 가오루와 우정을 쌓기 시작한 스스무. 스스무의 아버지와 가즈히코 아버지가 친분이 있어 가즈히코네 별장으로 초대되어 여름을 보내게 되었다. 다소 오만하고 잘난 척 하는 경향이 있는 가즈히코와 도쿄 사람이지만 어딘가 어수룩하면서도 다정한 분위기를 지닌 스스무는, 호리병 연못에서 동갑내기 소녀 가오루를 만나면서 함께 어울리게 된다. 두 소년 모두 가오루에게 첫사랑의 감정을 품었기에 전달되어 오는 파릇파릇한 분위기. 그 안에서 말로 설명하기 힘든 어딘가 불온한 기운이 비어져 나온다.

 

한편, 1935년 독일에서 함께 일하게 된 아사기와 데라모토, 그리고 그들이 모시는 고시바 이치조 회장.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아이다 마치코를 만난다. 일본에서 올 연인을 기다리는 듯한 아이다 마치코에게 인간적으로 호감을 품은 듯한 회장은 그녀에게 여러 번 식사를 청하지만 결국 별 다른 접점 없이 일행들은 헤어진다. 이들의 인연과 아이들의 인연은 과연 어디에서 이어지게 되는 걸까.

 

이야기를 읽다 보면 혼란스러워진다. 분명 어디엔가 아이다 미치코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듯 한데 도무지 그녀에 관한 단서를 찾을 수가 없다.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롯코의 여왕인가? 아니면 가오루의 어머니? 그것도 아니면 가오루의 고모인 히토미??!! 종잡을 수 없는 사람들의 인연 속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과 여러 단서를 따라 헤매다 보면 어느 순간 그제서야 그녀를 발견하게 된다! 왜 처음에는 눈치채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와 함께.

 

사실 이 작품을 정확하게 이해하게 된 것은 뒤에 실린 <옮긴이의 말>을 통해서였다. 여기에서 고시바 이치조 회장이 미혼 여성으로만 구성된 가극단 '다카라즈카'를 창립한 고바야시 이치조를 모델로 했다는 것, 제목 흑백합의 의미, 작가가 의도했던 점 등을 읽고 비로소 '아하!'했던 것. 그런 작가가 시력을 잃게 되자 2009년 자신의 실종을 예고하고 실제로 자취를 감췄다는 것도.

 

비교적 단순한 작품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리저리 페이지를 뒤적거리고 작품에 대한 해설을 읽고 나니 더 깊은 맛으로 다가오는 이야기. 속을 확률 100%의 이야기라고 하더니, 그 100%의 하나를 내가 채워주고 말았다!!

 

** 출판사 <모모>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