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
우샤오러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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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소설을 다 읽었을 때 개운함보다 찝찝함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 있다. 소설 속에서 사건은 해결되었지만, 그 세상이 현실과 너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이쪽의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고 느껴질 때. 여전히 우리는 변하지 않은 세상 속에 남겨져 있고, 누군가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계속 분투해야 하는 상황을 깨닫게 되면 가슴에 돌이 얹어진 것처럼 답답하다. 

 

우샤오러의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가 딱 그런 소설이다. 사건은 해결되었고 진실도 밝혀졌지만 아직도 피해자는 세상 도처에 방치되어 있다. 어쩌면 지금도 잔인한 상황 속에 내던져진 채 자신의 잘못으로 벌어진 일이 아님에도 자신의 죄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들은 왜 자신이 성폭행을 당했는지 설명해야 하나. 피해를 받은 것만으로도 모자라서 그 때의 자신의 행동이나 옷차림이 어떠했는지까지 이야기해야 할까. 성폭행을 당한 이후에는 웃으면 안 되나. 세상이 망한 것처럼 굴어야 하나. 죽을상을 하고 앞으로 남은 인생 내내 불행하게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건가. 

 

판옌중의 아내 우신핑이 사라지고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은 울창한 밀림을 헤쳐나가는 것과 비슷했다. 단서를 따라 우거진 나무들을 헤치고 생존에 필요한 무언가를 찾아나가는 여정. 그 끝에 숨겨진 것은 친족성폭행. 어쩌면 독자들은 피해자인 ‘그녀’를 잘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세상 누가 ‘그녀’의 입장을, 마음을 끝까지 헤아릴 수 있을 것인가. 다만,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심지어 자신의 출생이 떳떳하지 못함을 깨달아버린 소녀에게 다정하게 내밀어진 손을 뿌리칠 용기는 없었을 것이라고 조심스레 짐작해본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상태. 누군가가 자신을 구원해주기를 기다렸고 희망의 동아줄을 발견했지만, 결국 그 동아줄이 끊어져버린 현실 앞에서라면 누구라도 무너질 수 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린이한 작가의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이라는 작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에게서나 인정받는 쉰 살의 문학선생님에게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던 소녀 팡쓰치. 범죄를 눈치챈 어른도 있었고 쓰치의 괴로운 고백을 들은 친구도 있었지만 그 누구도 그녀를 구원해주지 못했다. 결국 잔혹한 상황을 ‘낙원’이라 여기며 참아내려고만 했던 쓰치. 작가 린이한은 성폭행을 당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 작품을 써냈고, 작품이 출간된 후 두 달만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 속 문학 선생님과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의 가해자 모두 뻔뻔하고 잔인하다. 자신의 행동을 ‘사랑’이라 이름붙이며 그녀들을 이용하고 결국 홀로 미래를 향해 걸어간다. ‘그녀’는 그런 그를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자신만 과거 속에 가둬두고 홀로 미래를 꿈꾸는 그 남자를. ‘사랑’이 그런 것이라면 차라리 나는 사랑받지 않음을 선택하겠다. 

 

촘촘하게 진실을 향해 다가가는 우샤오러의 작품은, 일견 지루하게 비춰질 수도 있으나 전혀 지루하지 않다. 독자를 끌어들이는 글솜씨, 잔혹한 범죄를 담담하게 기술해나가는 필력이 탁월하다. 어째서 정세랑 소설가가 ‘우샤오러가 지금까지 썼고 앞으로 쓸 모든 책을 읽기로’ 결심했는지 이해가 된다. 그가 문학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대해 나 또한 앞으로도 귀를 기울이고 싶다. 

 

** 출판사 <한스미디어>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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