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땅의 야수들
김주혜 지음, 박소현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9월
평점 :
품절



 

[이 땅에서 자신만의 삶을 꾸려나간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

 

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내 자신에게 되묻곤 했다. 왜 우리가 역사를 알아야 하는가. 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들이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걸까. 혹자는 과거를 거울삼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어떤 선택을 할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라고 말했고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문학으로서 역사를 접한 지금 다른 생각도 품게 되었다. 역사를 배우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겸손과 존경을 인식시키는 과정이라고. 과거를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듣다보면 삶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수많은 의문과 이름 붙일 수 없는 그 모든 것들에 경건함을 느끼게 된다.

 

[작은 땅의 야수들]은 1917년부터 1964년까지 약 50년이라는 격동의 시간을 그리고 있다. 일제강점기와 광복, 한국전쟁을 거치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 기생이자 배우였던 옥희와 그녀의 주변인물들, 오직 그녀만을 바라보고 애정을 갈구했던 호랑이 사냥꾼의 아들 남정호, 옥희가 사랑했던 가난한 고학생 한철과 각자의 신념에 따라 움직였던 사람들, 일본 군인들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해 한 시대를 살아나간 삶의 방식을 보여준다. 이 안에서 작품의 중심을 잡고 있는 인물은 바로 옥희다. 작품 속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세대와 세대를 잇고 있는 그녀는 존재 자체가 역사이자, 인간의 삶이 궁극적으로 어디로 향해가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일본군 소좌로 등장한 이토 아쓰시다. 그는 '일본군'하면 자연스레 떠올릴 법한 잔인함과 생생한 욕망을 그대로 간직한 인물로, 옥희를 향한 연정조차 깃털같이 가벼운 남자다. 그를 행동하게 하는 것은 바로 다름아닌 '즐거움'.

 

빌어먹을 전쟁 따위도, 외로움 같은 것도, 다 엿이나 먹으라고 해. 계속 살아남아.

p516

 

쾌락과 물질만을 좇아가는 듯 보였던 이 남자가 일본의 패배가 가까워질 무렵 옥희와 재회해 남긴 말이 가슴에 묵직하게 내려앉는 이유는, 그 또한 살아남는 것이 제일 중요했고, 그 시대를 살아왔던 사람들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생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까. 어쩌면 이토 아쓰시야말로 그 어떤 인물들보다 현실에 단단히 발을 딛고 살았던 사람들의 전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 무언가는 선택해야 했던 것이다.

 

역사소설인만큼 작품이 전달하는 시대상황을 알고 읽으면 더 깊은 재미를 발견할 수 있다. 조선의 땅을 수탈하기 위해 일제가 실시한 토지 조사 사업이나 산미 증식 계획에 대한 이야기도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어 작가가 자료 조사에 들인 노고를 가늠할 수 있었다. 현재 학교에서 근현대사를 배우고 있는 학생들에게 문구를 인용해서 보여주면 더 흥미롭게 역사를 접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만, 일제강점기 시대에 비해 광복 후 한국전쟁이나 여전히 혼란스러웠을 1960년대 이야기가 상대적으로 빈약하게 그려진 점과, 옥희와 한철, 정호의 이야기가 너무 신파조로 흘러간 듯 한 점에 아쉬움은 남는다.

 

우리가 살아있는 한 역사를 외면하고 살아갈 수는 없다. 인간이 숨쉬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역사이므로. 하지만 현실적으로 역사공부에 진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럴 때 우리 마음 속에 긍지를 일깨워주고 남아있는 불씨를 활활 불타오르게 해줄 역사소설을 읽어보자. 지나간 시간을 꿋꿋이 버텨온 사람들에 대한 경외심을 배우고, 나는 이렇게 살아야겠다는 삶의 표상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 출판사 <다산책방>으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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